사전적 정의는 대체로 '속 빈 강정'을 떠오르게 한다. 물건이 적어 오가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가 연상될 수도 있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든 허세의 사전적 의미는 실생활에서 이용하는 뜻을 담기에 부족하다. 국립국어원은 1996년 외래어 순화 과정에서 '쇼맨십(showmanship)'을 허세와 같은 의미로 제시했다. 그러나 쇼맨십이 특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즐겁게 하는 기질, 얄팍한 술수로 남을 현혹해 일시적인 효과를 노리는 수완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허세'를 정확히 표현하기에 역시 부족함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허세는 보통 '행동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동사 '부리다'와 함께 사용되는데, 성질부리다, 욕심부리다, 꾀부리다, 말썽부리다(‘말썽피우다’의 평안도 사투리) 등이 동사로 인정되는 반면 ‘허세부리다’라는 말은 없다. 명사인 ‘허세’와 동사인 ‘부리다’를 함께 써서 의미를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맥락에서 허세를 부린다는 것은 부정적인 특징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허세는 ‘떨다’는 말과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떨다’는 동작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명사와 함께 쓰일 경우 ‘부리다’와 같은 의미가 되어 ‘그런 성질을 겉으로 나타내다’로 쓰인다. 마찬가지로 푼수를 떨다, 난리법석을 떨다, 주책을 떨다 등의 표현을 통해 이 역시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허세를 어떻게 정의할까? 집단지성을 통해 지식을 완성해 나가는 나무위키에 따르면, 허세는 ‘실력이나 실속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정 연예인의 발언이 방송 소재로 활용된 후 새로운 의미의 허세가 대중에게 재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의미의 허세는 쓸데없이 아무런 의미 없는 폼을 잡거나 자신에게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행위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온몸에 흐르는 전율이 모세혈관을 자극한다. 리듬에 취한다. 비 따위도 내 열정을 막지 못한다.’ 같이 진부한 문구에 현재 자신의 감성을 담는 식이다. 여기에 비에 흠뻑 젖은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함께 올리면 얼핏 진지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감정보다 과장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표현된 몸짓 언어는 어딘가 보기에 불편하고, 왠지 모를 실소가 터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상대가 허세를 부린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으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이 새로운 의미의 허세일까? 없으면서 있는 척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돈, 시간, 젊음, 건강, 용기, 지식, 경험 등은 누구에게 있지만 누군가에게 없는 것이다.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갖고 싶을 수 있고, 그래서 있는 척할 수 있다. 갖고 싶다는 것은 주로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일주일 용돈을 한 끼 식사비로 지불하면서 “인생 뭐 있어? 돈은 또 벌면 되는 거지!”라고 말해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발생한 복합적인 감정을 한 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돈이 넉넉하지 않지만 괜찮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런 척’인지, 진짜 ‘그런 것’인지 스스로도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통 이런 경우도 허세를 부린다고 할 수 있지만, 허세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허세의 정의가 어려운 것은 관련어 검색에서도 나타난다. ‘ILAB 한국어 관련어 사전’에 허세를 입력하면 허세를 둘러싼 다양한 배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중2병, 겉멋, 허영심, 자만심, 과시욕, 욕심 등 비교적 비슷한 맥락의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 어리광, 애교, 교태, 구두쇠, 딴청 등 쉽게 관련성을 떠올리기 어려운 개념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나열되어 있다. 하나의 개념이 상반되는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허세 관련어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자만심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 관련된 것이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 드러내며 말하는 것인데, 허세를 부리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랑하는 것과 다르다. 과시욕은 일반적으로 상대보다 내가 우월하고, 상대와 나는 다른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구별 짓기 위해 나타난다. 힙합 문화의 일부인 ‘플렉스(flex)’는 슈퍼카와 명품 구입으로 경제적 부를 드러내거나, 타고난 재능을 뽐내며 자신이 이른바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에 있음을 표현한다. 드러내는 것의 맥락은 허세와 같지만 허세를 부리는 것은 그렇게 거대한 것으로 상대를 박탈감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허영심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겉치레인데, 주로 물질적인 것을 말한다. 비싼 물건을 갖고 싶지만 경제적 사정이 마땅치 않을 때 '짝퉁'으로 불리는 모조품을 구입하는 마음에는 허영심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허세를 부린다고 할 때 심리적인 것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허영심을 허세와 같은 의미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제가 허세를 좀 부렸어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력이나 실속이 없는데 뭔가 있어 보이려고 거짓 행위를 했다고 봐야 할까?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 상대에게 상실감을 줬다고 봐야 할까? 이렇게 해석한다면 허세를 부린 사람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애초에 허세를 부릴 때 거짓말을 해서 누군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허세의 뜻은 더 이상 사전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된 상태다. 이 말이 어떤 그릇에 담겨야 의미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지, 이제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