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를 정의하는 사람들3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이 자신에게 있는 척하는 것

by CHOI JIWON


살다 보면 어떤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어떤 것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지 알게 된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과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구분하게 된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굉장히 아팠는데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다시 탄 기억이 있다. 자전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픈 것을 빨리 잊었을 수도 있고, 아픈 것보다는 창피한 마음이 커서 아프지 않은 척한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넘어져서 아플 텐데 울지 않는다며 기특해한다. 꼬마는 아플 때 울면서 고통을 드러내는 것보다 울음을 참고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꼬마는 다음에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선택한다. 다쳐서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해도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과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정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이 무엇을 좋게 생각하고, 무엇을 나쁘게 생각하는지 명확한 구분표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게 보이거나 혹은 나쁘게 보일 수 있는지 직감할 수는 있다. 이런 직감이 가능한 것은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평가 기준들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떨리는 것을 숨기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불편한 것을 내색하지 않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습득, 내적 통찰을 통해 어떤 것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선택인지 이미 알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왕이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발표를 앞두고 너무 떨리지만 떨리지 않은 척, 기억할 수 있는 영어 단어와 문법 지식을 총동원해 최대한 영어를 잘하는 척, 오랜 시간 돈을 모아 겨우 산 물건이지만 별거 아닌 척, 키높이 신발을 신어 걷기에 불편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런 특징이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는 강심장, 자유롭게 구사하는 외국어 능력, 비싼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 일반적으로 불편한 것도 불편해하지 않는 특별함.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인 척하는 이유는 그 상황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다.




최지원과 허경호는 허세를 ‘있는 척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허세는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을 상대에게 드러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지각(perception)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특정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눈, 귀, 피부, 입, 코를 통해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아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감을 통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이어야 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이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하더라도 있는 척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허세의 요점이라고 본다.




어떤 특징이 긍정적으로 지각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배경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문화와 사회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똑같은 특징이 긍정적으로 지각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지각될 수도 있다. 어떤 사회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지각된다면 다른 사회에서는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각될 수 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사회가 있는 반면, 그런 오지랖을 사생활 침해나 심각한 결례로 지각하는 사회도 있다. 만약 처음 접하는 것이라 해도 우리는 이미 내재된 사회적 기준을 통해 대상을 지각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긍정적으로 지각되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면, 상황에 따라 내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특징이라고 지각해도 그 특징을 모두 지닐 수 없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라는 것은 바로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 때이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내가 어떻게 보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더구나 상대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허세의 특징이 여기에서 관찰된다. 허세는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 때 자신이 긍정적으로 지각한 특징을 드러내는 일이다. 허세를 부릴 때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MBC 주말 예능 ‘무한도전’은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라는 놀이기구를 타며 미션 수행하는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T익스프레스는 시속 104km의 속도와 77도의 급경사 하강 코스가 있는 롤러코스터다. 아무리 놀이기구를 즐겨 탄다고 해도 웬만하면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하강하는 코스에 이르면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긴장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지각되는 특징이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는 미션 수행을 위해 T익스프레스에 올라타면서 전형적인 허세를 부린다. 정형돈 씨는 자신은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기대가 되니 어서 출발하라고 말한다. 롤러코스터가 출발한 후에는 날씨가 좋고 상쾌한 데다 거의 누워서 탈 수 있으니 너무 편하다고 한다. 이후 급경사 하강 코스에 이르기 직전에는 높은 곳에서 보는 경치가 너무 예쁘다며 신록이 우거진 금수강산을 예찬한다. 하지만 곧 거대한 낙하를 예감한 정형돈 씨의 경직된 표정과 함께 ‘바닥난 허세’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정형돈 씨는 시청자들에게 겁이 많은 사람, 놀이기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스릴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을 것이다. 엄청난 속도와 급경사의 하강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긴장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정형돈 씨가 지각하고 있는 긍정적인 특징일 것이다. 물론 예능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절한 과장이 더해졌겠지만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을 드러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한 전략은 긴장된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형돈 씨의 사례에서 허세의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최지원과 허경호는 허세의 특징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는다. 어떤 경우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일이 있다. 상대를 비하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우월해 보이게 하는 전략이다. 같은 명도의 색도 주변을 더 어둡게 하면 상대적으로 밝게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색의 명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을 낮추거나 하찮게 보면서 업신여기는 것은 일시적으로 잘나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상대가 낮아진 만큼 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은 이유이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 정형돈 씨는 자신이 긴장하지 않았으며 여유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옆자리에 탑승한 다른 출연자를 이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옆자리에 탄 사람의 겁에 질린 모습을 놀린다거나, 어린애처럼 이런 것도 못 타냐고 타박하거나, 자신보다 먼저 놀이기구를 경험한 사람의 호들갑스러운 모습을 지적하며 자신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형돈 씨는 그저 자신이 긍정적으로 지각한 특징 즉, 긴장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만을 드러내려고 애쓸 뿐, 타인에 대한 비하와 비난은 전혀 없다. 상대의 허세가 살짝 밉기는 해도 진심으로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허세 부리는 것을 무조건 감싸겠다는 것은 아니다. 허세는 명백한 가짜 정보이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 기만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킨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고, 그 과정이 내가 좋게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인간적인 수용은 가능할 듯하다. 물론 내가 긍정적으로 지각한 특징이 상대에게는 부정적으로 지각되는 특징이라면 의도와 과정이 건전하다고 해도 결과까지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최지원, 허경호(2019). 허세와 내숭의 측정 척도 개발. <한국소통학보>, 18권 2호, 147-171.

최지원, 허경호(2021). 체면 민감성에 따른 허세가 개인 평판에 미치는 영향: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조절 변인으로. <언론정보연구>, 58권 3호, 15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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