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정을 꿈꾸다
아직도 낯선 나의 결혼 생활
내가 알던 결혼은 한 집에서 양육자와 피 양육자가 지지고 볶고 서로의 지갑을
모두 공유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눈앞에서 목격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인내심으로 나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육아하신 나의 주양육자는 당연히 '엄마'였다.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 가정 안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 아빠는 모든 경제권을 엄마에게 당연히 주었다. 양가의 대소사는 모두 엄마를 통해 전달되었고, 행사를 진두 지위하는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조용했고 자상했으며 단단했다. 아빠도 이런 엄마를 사랑했고 또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엄마는 완벽한 가정주부였고 우리 가족은 엄마라는 햇살 아래 잘 커나갈 수 있었다. 개다가 IMF를 겪은 많은 가정이 그랬듯 우리 엄마도 경제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이 아니어서 나는 이런 생활력 강한 현명한 여성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요즘 20-30대 여성들처럼 나도 성차별의 벽을 실감하면서 우리 엄마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엄마의 하루는 새벽에 아침식사 준비로 시작해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을 차례로 먹이고 준비시켜 회사와 학교로 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고, 저녁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한다. 강아지 산책과 식사 급여도 빼놓을 수 없다. 여자 셋, 남자 하나, 강아지 한 마리가 이루는 가정은 빨래도 한 가득이다. 매일 돌아가며 속옷, 겉옷을 분리하고 흰 옷과 검은 옷을 따로 빨다 보면 일주일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건 매일 있는 루틴 한 일일 뿐이다. 수건을 주기적으로 삶아 빨고, 걸레질은 최소한 주 2회 정도는 해가며 화장실 청소 음식물쓰레기 등 집안 구성원들이 잊어버린 일들까지 해 낸다. 엄마는 본인이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가사노동이 주 업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집과 나머지 구성원을 케어해왔다.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어려운 이 수많은 끝나지 않는 일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품은 어마 무시하다. 게다가 엄마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거대한 산을 두 번이나 넘어 여기에 왔다.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이제야 간신히 밥값을 하게 된 내가 엄마처럼 한 가정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길러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깨닫고 만 것이다. 나는 실패할 거라고. 물론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성인 나는 이제 여성이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당연히도 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심지어 그것이 내가 살면서 너무나 익숙하게 본 엄마의 삶 일 때 받는 충격은 다른 것이다. 우리 집은 그저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런 평범함을 구축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아, 나는 그래서 다르게 살기로 도망쳤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결혼 후 남편과 같이 살지 않기로 했다.
- 이것도 결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