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 Aug 18. 2022

갑자기 찾아온 결혼

진짜 집 없이 결혼하기

우리 올해 결혼할래?
우리의 결혼은 나의 반쯤 충동적인 프러포즈로 시작됐다.

학생 때부터 사귀어 온 나의 오래된 남자 친구는 결혼을 원했다. 결혼을 원했다기보다는 많은 남자들처럼 당연히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꿈꿨달까? 가정을 이루는 것에 두려움이 있던 나는 당연히 비혼에 가까운 말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건설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바로 회사에서 제공되는 숙소!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신입사원에게도 숙소를 지원해주었고, 현장 발령이 나면 당연히 숙소 제공이 되었다. 게다가 주말에 특근도 잦아서 주말부부도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된 것이다. 아 같이 살지 않으면서도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나는 툭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을 도전하게 됐다.


내가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를 하고 남자 친구는 잠시 멍해있었다. 그러더니 하겠다고 웃었다. 나는 캘린더 앱을 열어 적당히 한가한 날을 찾았다. 결국 결혼 날짜는 공휴일이 없는 11월로 잡았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사 결혼식을 신청하기로 했다. 바로 담당자인 친구에게 전화해서 식장을 잡은 덕에 우리의 결혼을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되었다. 그 후 양가에 각자 통보. 깜짝 놀란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혹시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하셨지만, 그저 우리는 우리 편한 대로 계획했을 뿐.


남들은 결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싸운다는데, 우리는 돈이 많이 드는 집을 안 해서 그런지 정말 즐거운 이벤트 준비하듯 했다. 결혼 준비 중에도 나는 해외 콘서트에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모든 준비는 남자 친구가 도맡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래서 이 시기를 가짜 결혼 준비라고 부른다. 주변에 결혼 준비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에....


결혼 후 남편은 회사 기숙사에 나는 부모님 집과 회사 숙소를 왔다 갔다 하는 삶이 몇 달간 지속됐다. 우리는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추어 데이트를 했고, 저녁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당시에 막 차를 뽑아 운전하기 시작한 나와 장롱면허인 남편은 기동력이 약하니 대부분 서로의 집 중간쯤 되는 서울에서 만나곤 했다. 호텔 데이트도 많이 했다. 다양한 호텔의 이벤트 패키지를 이용했다. 둘 다 집순이 집돌이다 보니 자주는 아니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만났던 것 같다. 나는 자잘한 연락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가끔은 남편 잘 있냐는 물음에 순간적으로 답을 못한 일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문했다. 건설업인 우리 회사에 널린 게 주말부부인데, 뭐가 신기하냐고. 단지 대부분의 직원이 남자라서 여자인 내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이 낯 선거냐고. 그 말을 하면 또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그거랑 그거랑 같냐'는 어처구니없는 답을 하기도 했지만 큰 태클을 걸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남의 인생이니까.


그런데 이런 만족스러운 내 삶에 태클을 건 것은 나의 부모님이었다. 특히, 엄마는 결혼을 해 출가외인이 된 딸이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 않는 모습을 못 참아하셨다. 우리는 반쯤 귀찮아서 혼인신고도 바로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하셨다. 엄마와 여러 번 설전을 벌였다. 남편과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공방전은 의외로 다른 이유로 해결되었다. 남편이 기숙사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전 01화 아직도 낯선 나의 결혼 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