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 수 없겠죠?
아무래도 우리 혼인신고해야 할 것 같아.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혼인신고라니! 이유는 즉슨 기혼남 인 것이 알려져 미혼에게만 제공되는 기숙사에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 몇 달 정도는 유예해주지만 그 이상은 눈치가 보인다고...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충 살고 싶었는데 남들이 다 챙겨가며 단계를 밟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1. 평범하게 남들처럼 우리 둘의 직장에 출근이 가능한 지역에 신혼집을 마련한다.(예, 서울/용인/광교 등등)
2. 남편 회사의 직원 복지 사항 중 하나인 사택을 신청해서 명목상 신혼집인 남편의 거주지를 마련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사택을 신청하려면 조건이 있었다. 기혼자일 것! 게다가 무려 가족관계 증명서로 결혼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뤄두었던 혼인신고를 해야 했다.
혼인신고(婚姻申告)가 무엇이냐. 「결혼한 사실을 행정 관청에 신고하는 일」 아니던가. 관청에 신고를 하면 이제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반 충동으로 재미 삼아한 결혼이 덜컥 현실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법적으로 얽힌다니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타협은 매우 쉬웠다. 당장 몇 억을 대출하고 갚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깟 혼인신고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부동산 가격 변화를 보면, 그때 사실 서울에 집을 꾸역꾸역 마련해서 둘이 지지고 볶아야 했다만 그랬으면 지금까지 부부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젓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실을 과거의 나도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여하튼 나는 남편과 같이 사는 일을 유예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신고를 결정했다.
혼인신고 당일 아직도 마지막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던 내가 떠오른다.
이 서류.. 제출하면 못 무르죠?
그렇게 나는 예상보다 너무 빠른 2017년 2월의 어느 날 법적으로 기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