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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Apr 28. 2024

산소 같은 02학번, 그게 나입니다

- 의대 증원 갈등이 소환한 교대 편입 회상 신

 잠시 쓸데없이 나라 걱정 하는 꼰대가 되어 볼까. 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학계의 갈등이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의료진 충원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정부 주장과 근본적 개혁 없는 증원은 결국 수도권과 특정 진료 쏠림만 부채질하는 결과로 이어져 밥그릇 싸움만 치열해질 거라는 의사들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끝없이 다툼이 계속되니 세상일에 무심한 편인 나 역시 걱정이 커진다. 그래서일까, 불쑥 나의 교사 입문 첫 단추가 떠올랐다.     


 23년 전 초등교육 현장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해찬 장관 주도하에 이뤄진 교육개혁 정책 중에는 교사 정년단축과 명예퇴직 권고가 포함되어 상당수 고경력 교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단을 떠나야 했다. 젊은 교사의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으로 선진국 기준에 맞게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해 교사의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교사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기였다. 여러 사범대학에서 양성되는 중등과 달리 특정대학교(교육대와 교원대)를 통해서만 배출되는 초등교사의 수급은 더욱 문제였다. 고심 끝에 정부는 중등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을 대상으로 특별임용고시를 실시하고 일정 시간 연수를 통해 초등교사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일터를 대책 없이 때려치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에게 떠밀려 들어온 사범대학, 꿈에서라도 쓸 생각 없었던 교사자격증이 떠올랐다. 마침 나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등산을 다니던 대학 후배도 이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 일단 어떤 시험인지 알아나 보자. 우리는 사이좋게 노량진 고시학원으로 향했다. 특별 임용고시 대비반이 그날로 마감이란다. 상담만 하자던 두 백수는 허겁지겁 긴 줄에 동참하여 등록을 마쳤다. 시험까지 세 달이라니 노는 것도 지쳤는데 하는 데까지 해보지 뭐. 초등교사의 ‘초’자도 모르면서 딱히 못할 것 같지 않았다. 연수도 해준다는데, 교생 실습도 했는데 초등학생이라고 뭐 다르겠어. 시험이 문제지. 그래 일단 도전하자.     


 나만 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교대생들의 반발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형식적인 연수를 통해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진입을 허용하는 정부의 대책이 무책임하다며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교대 교수들과 교원단체의 성명도 잇따랐다. 솔직히 그들의 주장이 ‘밥그릇 지키기’로만 여겨졌다. 일반 대학을 나온 이들에게 교사 자격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4년 동안 교직 과목을 이수했는데 초등교사 자격이 없다니, 초등과 중등교사 전보도 가능한 세상에 너무 낡은 생각 아닌가. 4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낫지. 자기들은 무조건 서울, 경기만 시험 치느라 절대적으로 지역 교사수가 부족한데 어쩌라고. 나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깝다는 거야 뭐야. 비상 상황이니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일이 묘하게 진행됐다. “당장 내년부터 채워야 할 초등교사 인원이 전국적으로 천 명이 넘는다. 결국 교대 시위는 꺾일 수밖에 없다”라고 자신하던 고시대비반 강사의 전망이 점점 달라졌다. 선임용 후연수라 더니 연수 후 임용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연수 기간도 6개월에서 1년, 1년 반으로 점점 늘어났다. 결국 특별 임용고시는 교대 특별 편입 시험으로 결론 났다. 편입 인원을 늘리고 초등교사 자격증을 얻은 후 정식 임용고시를 거치기로 합의한 것이다. 전국적 증원 방침에서 서울은 제외됐고 경기도 역시 교과 자격증 소지자만 응시 가능했다.      

 맙소사. 무슨 놈의 정책이 이렇게 시간대별로 달라진담. 이렇게 결론 날 거면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이 나이에 2년이나 다시 공부를 하라니. 그것도 교육심리학 자격증을 가진 나는 지방에서만 편입이 가능하고 시험도 지방만 볼 수 있는 거잖아. 도대체 일관성 없는 정부다, 왜 이리 소신이 없냐. 교대 학생도, 교수도 한통속으로 이기적이다 후배와 나는 불을 뿜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떤 정책이든 졸속으로 시행되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부작용이 있으니 충분한 연구와 폭넓은 의견 수렴이 전제돼야 함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밥그릇 지키기가 왜 나쁜가. 밥그릇만 지키려 합당한 주장에도 귀를 닫는다면 문제지만. 검토 없이 졸속으로 정책을 발표한 정부의 책임이 더 컸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협의를 거치며 지역별로 필요한 예상 교사 수가 정교하게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부족한 교사가 많은 지역은 타 지역 사범대학 졸업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유인책을 제시하는 동시에 의무 근무 기간을 명시하여 유출을 막는 방안을 마련했다. 세 달의 진통을 거쳐 처음보다 한결 매끄럽게 손질된 교사 증원 정책이 발표된 셈이다. 아무리 급해도 밟을 절차 다 밟고 들어야 할 의견 다 들어서 내실 있는 정책을 발표하는 것, 그것이 정부의 기본 임무가 아닐까. 교대생들의 반발이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선안을 수용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책은 다듬어졌지만 문제는 나였다. 이렇게 정교한 대책이었다면 ‘초등교사 되기’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미 세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특별 편입 시험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없는 돈에 쏟아부은 학원비, 교재비가 떠올랐다. 뭘 하느라 새벽에 나가 컴컴한 밤에 들어오나 궁금해하는 가족들의 눈빛을 모른 척하며 도서관에서 코 박고 있던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 기왕 빼든 칼이다. 뭐라도 썰어보자. 맛없으면 그때 버리자. 

 나와 후배는 공주교대에 원서를 접수했다. 절대적으로 초등교사수가 부족했던 충남은 모집 인원도 많았을 뿐 아니라 타 지역 사범대학 졸업자에게 가산점도 주었기 때문. ‘합격한다 해도 팔자에 없는 대학생 노릇 할까 보냐. 시험이나 한 번 보는 거지.’ 생각하면서도 떨어지기는 싫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정책에 기막히고 코 막혀가며 세 달을 어떻게 버텼는데, 버려도 내가 버려야지 시험마저 탈락한다면 너무 분할 것 같았다.      

 어느덧, 특별 편입 시험 날. 시험장 앞에는 급조된 초등교사 증원정책에 여전히 반대하는 교대생들의 연좌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뾰족하기 이를 데 없는 눈길을 외면한 채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치밀하지 못한 교사 수급 정책의 피해자는 저들이고 얼떨결에 수혜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은 나였으니 말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펼쳐 든 시험지는 또 왜 이리 예상을 벗어난 문제들뿐인지.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치렀는지 모르겠다. 이러려고 동생 같은 애들 밥그릇 넘본다는 소리 들으며 팔자에 없는 수험생 노릇 했나. 합격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술이나 왕창 먹자. 내일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일자리 구해야지.     


 결과는? 세상에 합격이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주 교대생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속한 전공에서 가장 나이 많은 편입생. 2002년, 나는 산소 같은 02학번으로 초등교사로서 갈고닦아야 할 ‘덕목’을 갖추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공주에서 맞이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사진출처-공주교육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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