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인 줄 알았는데 다람쥐였다

- 몸 가볍게 떠날 수도 있으련만

by 가을투덜이

새해가 밝았다. 교사로서 맞이하는 스물한 번째의 첫날, 학년도가 마무리되지 않은 터라 올해 역시 특별한 감흥은 없다. 전근, 학년과 업무 이동 계획으로 늘 뒤숭숭한 학교의 1월, 여기에 학교 밖 상황 역시 어지러운 일들로 가득하니 새로움을 느끼기 더욱 어려운 출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나의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새해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교실 짐 정리가 그것. 최근 3년은 같은 학년을 맡으면서 고맙게도 교실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벽마다 수납장이 새로 생겨 물품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곳곳을 뒤질 때면 ‘내 언젠가는 꼭 라벨 붙여 정리하고 말 거야’ 다짐했지만 결국 교실을 비워줄 수밖에 없는 지금에야 허겁지겁 실체를 확인하는 중이다.


최대 5년에 한 번은 학교를 옮겨야 하는 교사, 특히 초등 교사는 이동할 때 가지고 가야 할 짐이 적지 않은 편이다. 학습준비물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지 않은 지역은 더욱 그렇다. 가끔 몸만 와서 현지에서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배짱이 없다. 경력과 무관하게 새 학교에 오면 신입과 다를 바 없는 처지. 자르고 붙이고 칠하는 활동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구하려고 낯선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느니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게 속 편하다. 그래서 기본적인 물품은 들고 다니는데 아뿔싸, 살림이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다.


돌이켜보니 이 학교로 옮겼을 때는 교과전담만 내리 3년을 맡았던 터라 가져온 짐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파도파도 끝없이 나오는 이 녀석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생산되었다는 뜻인데,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뭐가 많은데 난 왜 늘 필요한 걸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거렸을까. 책상 반경 1m 인근에서 필요한 건 다 찾아 썼던 것 같은데, 구석구석 물건은 왜 이리 쟁여 두었을까. 다다익선이라며 쌓아 놓은 도화지와 풀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렇게 뒤져도 결국 못 찾아 재료를 변경해야 했던 색종이컵도 이제야 다시 만났다. 심지어 학기 초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핑계로 다음 해 쓰겠다며 마련해 놓고 까맣게 잊었던 물건들도 적지 않게 ‘발굴’됐다.


문득 추운 겨울을 앞두고 이곳저곳 다니며 도토리를 묻느라 바쁜 다람쥐가 떠올랐다. 미래를 준비하겠다며 열심히 먹이를 숨겨두고 결국 어디에 저장했는지 까먹어 남 좋은 일 시킨다지. 내가 딱 그 짝이다. 다람쥐 먹이는 다른 생명이 자라는데 기여라도 하는데, 수납장을 벗어나 산처럼 놓여 있는 짐들은 단지 끝 모르는 내 물욕의 증거인 것만 같아 민망하다.


다행히 아쉬운 것 많은 2년 차 동료교사가 옆 반이라 상당수 물품을 쓸모 있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짐이 한가득이다. 내 평생 처음 한 학급 1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로 가게 될 것이 확실하고, 어쩌면 그곳이 교사로서 마지막 학교일 수 있음에도 강단 있게 덜어내질 못한다. 그중에서도 학급문고 놓기가 왜 그리 쉽지 않던지. 학생수에 맞게 다양한 책들을 마련하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종류별로 10권씩 추렸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짐, 더 줄여야 마땅함에도 포기를 못하고 있다. 교구 욕심은 또 왜 이리 많이 냈을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지니 슬금슬금 모아둔 게 또 한 가득이다.


나는 여전히 다람쥐, 도토리만 보면 일단 볼이 미어져라 입 안에 욱여넣는 중이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마련한 것일수록 쓸모와 상관없이 자꾸 짐 바구니에 들어간다. 결국 또 구석에 쑤셔 박은 뒤 까맣게 잊을 걸 알면서도 자기 최면을 하며 짐을 쌓아간다.


‘이것저것 무턱대고 버리고 나면 꼭 다시 사게 된다니까.’

‘다음에 학생수많은 학교로 전근가게 되면 그땐 어쩌려고.’

‘이거 모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갖고 있다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남 못주지, 아무렴.’


새로움을 위해서는 정리와 비움이 먼저일 터. 쓸모와 미련을 현명하게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 쌓인 짐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야겠다.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아쉬움을 덜어내듯 몸 가볍게 발을 옮기면 좋으련만, 여전히 훌훌 털어내는 데 서툰 나는 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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