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리 조림이
그렇게 맛나지만 않았어도

- 새 학교의 향방이 결정된 그날의 저녁 모임

by 가을투덜이

“추 부자앙, 잘 지냈는감?”

부장 꼬리표 뗀 지가 언젠데, 그 양반은 언제나 나를 그렇게 부른다. 뭉근히 달인 대추차 같은 목소리로 ‘추 부자앙’하고 부르면 서둘러 응답할 마음에 호칭 바로잡기는 늘 뒷전이다.


“아이고, 교장 선생니임, 어떻게 지내셨대유?”

두 달 전쯤 행사장에서 얼굴 본 적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 나눈 건 3년도 더 됐는데 어제 본 듯 친근했다. 이 정도 간격이 있었다면 응당 따라와야 마땅할 거리감이나 물음표-부탁할 일이 있는 건가, 부모님께 변고가 생겼나 같은- 없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웬일이지?’라는 마음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면 올해 몸담을 학교의 명칭이 달라졌을까.


S 교장과는 2014년, 교감과 부장교사로 처음 만났다. 그녀가 승진하여 학교를 떠날 때까지 나의 질병휴직 기간을 빼면 기껏해야 두 해도 안 되는 시간을 공유했을 뿐임에도 나는 내내 S 교장이 좋았다. 호방하지만 사람을 살필 줄 아는 섬세함, 관리자로는 보기 드문 유연성, 특히 학생들을 생각하는 진심이 가장 마음에 닿았다. 방과 후 학생들과 축구를 한다거나 결근한 교사 대체 수업은 물론, 학부모 민원 전담이 주된 업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분이다. 이런 진심과 열정이 폐교 직전의 학교를 현재까지 이끌며 학생들을 늘게 한 비결이겠지.


전화의 주목적은 이번에 전근하는 동학년 K 부장이 당신이 있는 학교로 내신을 희망하도록 측면 지원해 달라는 것. 교사는 5년에 한 번 일터를 옮겨야 하는데, 농어촌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업무도 많고 교통이나 기타 여건이 좋지 않아 대부분 꺼리는 편이다. 능력에 성격까지 좋기로 이름난 K가 소규모 학교로 옮기려 한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퍼지자 도처에서 그녀를 ‘모시기’ 위한 연락이 이어지는 참이었다. 이를 알게 된 S 교장, 추진력의 여왕답게 발 빠르게 움직였다. 벌써 당사자에게는 구두 승낙을 받았다니 나를 통해 굳히기에 돌입하려는 전략이었으리라. 전보 서류를 쓰기 전이니 희망학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추 부장은 언제까지 그 학교에 있나?”

“저도 이번에 만기예요. 집 근처로 옮길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음성통화 중인데 눈빛이 반짝였다 느낀 건 내 착각일까?

“확실하지 않지만 이번에 두 사람이 학교를 옮길 수도 있어, 그럼 추 부장도 여기 와서 나랑 같이 있자.”

“네에? 저, 저도요? 자리가 있으면 고민해 볼게요. 교장선생님이 부르시면 가야지요.”

위 대답을 번역하자면 ‘무슨 그런 말씀을, 이 나이에 제가 왜요.’ 그냥 해보는 말이겠지 여기며 일단 모양 좋게 답하고 말을 이었다.

“교장선생님 뵌 지도 오래됐고 우리 부장하고 인사도 나눌 겸 저녁 같이 하시면 어떨까요?”

“그러세. 내가 장소 정해 연락함세.”


일주일 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그녀는 우리를 위해 두 개의 달걀프라이를 부치고 있었다. 두 사람 자리가 날 것 같다는 소식과 함께.


‘어라? 이게 아닌데.’ 느낄 틈도 없이 이미 주문해 놓은 코다리 조림에 눈이 갔다. 서둘러 먹지 않으면 식는다며 연신 생선을 밥 위에 얹어주니 일단 먹기 바빴다. 자극적인 맛은 일단 손부터 내젓던 나인데, 거부할 수 없는 짜릿한 매콤함에 자꾸 손이 가니 심상치 않았다. 나를 위해 특별히 추가했다는 오징어 찜을 예사롭게 넘길 게 아니었는데. 야들야들 부드러운 오징어를 삼키느라 전근 문제가 K는 물론이고 본격적인 내 일이 되고 있음을 알아챈 건 배가 가득 차 숨쉬기도 버거워진 뒤였다.


“여기만큼 경험 많은 인력이 필요한 곳이 없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교사의 손길이 주어지면 달라지는 학생들이 있잖아. 그런 변화가 가능한 곳이야. 먼저 근무하고 있는 분들과도 분명 잘 맞을 거야. 추 부장. 나랑 같이 있음세.”


안 그래도 젓가락질 사이사이 어색한 두 사람을 연결한답시고 각자와 공유했던 나의 시간을 소환하다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참이었다. 팔자에 없는 연구부장을 맡아 뒤집어질 때마다 ‘오다 주웠어’ 느낌으로 필요한 자료를 슬쩍 던져주던 것이며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사고들로 이런저런 한숨을 공유하던 10년 전이 떠올랐다. 꿈에도 예상 못한 암 발병, 아무 말 없이 두고 간 밑반찬 몇 개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도.

K 부장은 또 어떻고. 솔선수범이 몸에 배어 ‘간디’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그녀는 태생이 선한 사람이다.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K와 함께 한 3년의 시간을 생각하니 한층 흔들린다.


이런, 코다리 조림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일까. 언제 묻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기억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한다. 거칠기 짝이 없지만 교사의 관심에 목말라하던 학생들, 머리꼭지 돌만큼 어깃장을 놓다가도 밥숟가락을 가까이하면 고개 돌리는 법 없이 입 벌리던 병아리들. 그들과 함께 한 농도 짙은 시간과 공교육의 역할이 뚜렷한 공간에서 언젠가 다시 일해 보겠다던 용감하고 열정적인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7년 만의 재회임에도 신뢰를 보내는 선배의 마음, 그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한 통의 전화, 한 번의 저녁 대접에 홀랑 넘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보 희망서를 작성했다. 전교생 30명, 통근 거리 22킬로미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양방향 교행이 불가능한 길을 지나야 다다를 수 있는 초등학교로.


그 전화를 받는 게 아니었는데, 나의 만기를 밝히는 게 아니었는데, 저녁 같이 먹자 하는 게 아니었는데, 코다리 찜을 얻어먹지 말걸, 식사 후 집에 모셔다 드리자 기어코 그 밤에 밭에서 캐내 실어준 당근 맛은 또 왜 그리 좋았는지.


이런 말을 달고 사는 2025년일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 되지도 않는 헌신하는 교사 코스프레를 왜 했을까 눈 비 오는 날 30분 넘게 운전대를 잡으며 가슴을 칠 수도 있겠다. 만세를 부르며 등교한다는 학생들, 스카프를 날리며 고라니마냥 뛰어다니는 그들을 잡으러 다녔다는 동기 교사의 경험담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20명 아래로 가르쳐 본 경험 없는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들과 수업시간을 어떻게 채워갈까 생각하다 보면 한없이 작아진다.


그렇지만 나의 결정에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목소리에 다시 신이 난다. 무한 신뢰를 보여주는 눈빛에 뭐라도 된 듯 힘이 솟는다. 나를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곳에서 3월이면 새로운 시작이다. 기대만큼의 나날들이 아니라 해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함께여서 좋았던 이와 함께 가는 시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어느 때와 다른 출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신학기를 앞두고 항상 춥고 서늘했던 2월의 싱숭생숭한 마음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표지사진: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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