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같은 세상 문을 두드릴 네게 보내는 뒤늦은 격려
다윗아, 안녕? 전학 와 처음 만난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지났으니 지금은 스쳐 지나가도 서로 못 알아볼 수도 있겠네. 중학생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6년쯤 네 이름을 잊고 살았나 보다.
처음 만났을 때 다윗은 2학년이었지. 수업이 끝난 뒤 ‘엄마’의 손을 잡고 교실로 찾아온 너, 빠진 앞니를 감출 생각 없이 입을 활짝 벌리며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8살 개구쟁이더구나. “우리 엄마예요”라며 옆에 있는 이를 소개할 때 선생님의 숨길 수 없었던 어색한 미소를 다윗이 알아차리지 못했기를. 일주일 전, 경기도에서 여기로 오게 된 까닭을 이미 들었던 터라 너무도 자연스러운 엄마라는 호칭에 당황했고, 너의 밝은 웃음이 오히려 편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선생님은 그때 ‘그룹 홈’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단다.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지낸 너, 같이 지내는 형들의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오며 위탁 가정에서 생활하게 되었다지. 우리 엄마예요 라는 말은 “내게도 집이 있어요. 엄마와 아빠, 형이 새로 생겼어요.”의 다른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난생처음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느껴졌지만 그 마음을 진심으로 축하하기엔 나는 너무 세상을 아는 낡은 어른, 그저 다윗의 ‘엄마’와 안타까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난처해했지. 결국 너의 햇살 같은 웃음은 그날 이후 계속 빛이 바래갔지만 나는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구나.
다윗아, 이후 너와 보낸 학급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어. 40대 후반 접어든 나이였음에도 다윗과 같은 환경의 친구를 한 번도 가까이에서 겪어보지 못했거든. 분명히 5분 전만 해도 즐겁게 웃고 떠들던 네가 왜 갑자기 굳은 얼굴로 주먹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지 짐작도 안 되고, 예고 없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까닭도 알 수 없었지. 힘은 또 얼마나 세던지. 엄마가 달려와서 너를 집으로 데려가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너를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는 일뿐이었단다.
함께 한 10개월, 선생님과 친구들의 물건에 손을 대고, 시험지를 찢고, 모둠 활동만 하면 싸워대던 너, 까닭을 물어도, 달래도, 야단을 쳐도 들을 수 있는 답은 없었어. 바위처럼 꿈쩍 않던 다윗아, 위탁 가정 보호자와 아동센터 상담사로부터 간간히 네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무력감은 커져만 갔지. 어린 네가 겪은 8년의 시간은 너무 혹독했고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니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더구나. 피가 철철 나는 아이 앞에 보잘것없는 반창고 하나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반복했지. 뒤처진 공부를 가르치고, 이런저런 방과 후 프로그램에 넣어도 보고, 돈만 생기면 영락없이 사 모으던 아이언 맨(상담전문가가 아니어도 아이언맨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어)을 뇌물로 주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저 달아나는 너의 손만 놓치지 않으려고 매달렸던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고, 그래서 교사로서 참 무력하게 느껴지는 날들이었어.
솔직히, 시간이 지나며 그조차 무심해졌단다. 어리든 아니든 결국 자기 인생을 견디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 고작 1년 같이 있는 담임이 할 수 있는 건 뭐 그리 많겠어, 나에겐 나머지 25명의 친구들도 소중하니까 이런 말들을 변명처럼 되뇌며 말이야.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다시 너의 담임이 된 적은 없었지만, 오가며 다윗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어. 뭔가 해결 못한 숙제를 방 한쪽에 밀어놓은 기분이 들었단다. 이유는 알지 못한 채.
그로부터 5년 뒤였나, 학습 연구년을 신청하여 1년의 휴식기를 보내며 감정코칭 연수를 들을 때였지. 강사가 살면서 누군가와 해결되지 못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어. 느닷없이 다윗, 네가 떠올랐어. 그리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지. 사람들은 깜짝 놀라 물었어. 도대체 왜 우냐고. 어떤 친구가 한없이 가엾고, 그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다윗아. 그때 학교 밖으로 달려가던 널 그냥 묵묵히 안아 줄걸 그랬어. 까닭도 묻지 말고, 추궁도 말고, 달래지도 말고 말이야. 진심으로 아파하고 토닥이는 것이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전부라면 그냥 그것만 하면 되는 거였어. 선생님이 너와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어도, 네 인생을 책임질 수 없어도 말이야. 그랬다면 의무감이 가득 실린 말이라 마음에 닿기도 전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무의미한 위로는 아니었을 텐데. 그래서 힘든 삶의 여정에서 떠올리면 잠시 쉼이 되는 산들바람이 되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를 만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자립준비청년'이 되었을 다윗아, 정글 생태계보다 잔인하고 비정한 어른들의 사회에 맨몸으로 던져진 너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신이 있다면 이루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내가 보지 못한 6년 동안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쌓였기를, 마음의 힘이 튼튼히 뿌리내리는 시간이었기를 말이야.
무엇보다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윗 옆에 있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골리앗 같은 세상 문을 혼자 열어가는 막막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구나. 얼굴 보고 전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의 뒤늦은 격려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강하고 행복하렴, 다윗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