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농사를 짓듯 청소한다

by 가을투덜이

2교시 수학 시간, 창문 밖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사람이다. 불과 5분 전 마실 물을 채우려고 내려간 아래층에서 정수기를 번쩍번쩍하게 닦고 있는 걸 보았는데 어느새 올라와 복도를 쓸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여사님, 날아가는 먼지 앉을 틈도 좀 주고 그러세요. 이러다가 병나신다. 제발 쉬엄쉬엄하세요.”

“선생님은 어떻게 내가 막 일하려고 할 때만 보고 그러신댜. 조금 전까지 쉬다 이제 시작한 거유.”


그럴 리가, 이 학교에 몸담은 지 4개월째, 나는 그가 점심 먹을 때를 제외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곳저곳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교장실 회의 책상을 닦고 있다. 그러더니 서랍장으로 순간이동. 한 손에 걸레, 다른 쪽에는 분무기를 들고 매의 눈으로 얼룩을 공격한다. 이번에는 화장실 옆 세탁기가 분주히 돌아가는 중, 할 일을 마친 걸레들이 말끔해지고 있다. 급하거나 거칠지 않은 동작, 하지만 결코 끊기는 법은 없다.


논밭이 둘러싸고 있는 시골 학교 특성상 여름이 다가올수록 학교는 온통 벌레 천지이다.(파리채는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생필품이다) 출근하며 곳곳에서 목격한 파리, 모기, 하루살이의 흔적은 그가 행동을 개시함과 동시에 자취를 감춘다. 손힘이 약하고 뒤처리가 서툰 초등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깨끗하기 쉽지 않은 대표적인 공간, 그러나 이곳은 언제나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다.


전교생 30명 조금 넘는 작은 학교, 마음만 먹으면 광나게 쓸고 닦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알 것이다. 한 명의 아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는지.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고작 2명인 우리 반도 돌아서면 교실 꼴이 말이 아니다. 지우개 가루, 오리고 자르고 붙였던 자국, 방과 후 강좌 쉬는 시간마다 제공되는 간식의 흔적까지 생활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혼자서 학교의 청결 업무를 번듯하게 해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 유시진 대위도 아니면서 그는 그 어려운 일을 날마다 해낸다.(드라마 ‘태양의 후예’ 참조)


그가 일하는 모습은 무언가 다르다. 우선,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숨 쉬듯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또 하나, 쉼 없이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노동의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몸 움직여 하는 일인데 힘겨움이 어찌 없을까. 그럼에도 그의 몸짓에는 자기중심이 있다.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어느 날, 수업 끝난 오후 그가 교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요즘 남자 화장실 변기에 오물이 묻어 있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반 엉뚱이가 양변기에 소변을 보는데 뚜껑을 모두 올리지 않고 사용하더라고요. 시간 날 때 지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고, 여사님이 바로 말씀하셔도 됐을 텐데요.”

“아무리 어려도 바로 실수한 걸 말하면 자존심 상할 텐데 내가 말할 수야 없지요. 선생님이 소변기 사용법을 다시 알아보자고 하면서 슬쩍 얘기해 주세요.”


학생들의 행동이 한눈에 들어오는 소규모학교는 교사, 교직원의 구분 없이 지도에 한몫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생이 실수라도 하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태 “산만이 녀석, 귀에 피날 수도 있으니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걸 뼈에 새겼을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생기면 늘 담임을 찾아와 상담한다. 지도는 교사의 몫이라는 인식과 함께 학생들의 자존심까지 생각하는 그에게 또 한 번 배우는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움직임은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농부가 땅을 일구는 모습과 닮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당진에 와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입이 딱 벌어졌었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웃자란 녀석들을 솎아내고 물을 대거나 빼느라 바쁜 농부의 삶에 애당초 ‘쉼’이란 단어는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치고 찌들어 보이지 않았다. 땅이라고 이름 붙은 곳은 놀리지 않고 꽃 한 송이라도 심는 그들, 입에 풀칠하려고 억지로 하는 일이라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끼고 가꾸려는 정성이 담겨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도 마찬가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얼마나 하는 일에 마음을 주고 있는지 느껴진다. 마음이 담겨 있는 움직임에는 힘이 있다.

스토커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종종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있다. 의식하지 않은 채 얼굴 전체로 번지는 온화한 미소, 섬세하고 꼼꼼한 닦기, 느긋하고 일정한 대걸레의 움직임이 내 집인 듯 편안해 보여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잔잔해진다.


생애 첫 작은 학교로의 이전, 왕복 50km의 출퇴근, 21세기와는 동떨어진 풍경들에 적응하느라 여전히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무게중심이 아래에 단단히 자리한 듯 안정감 있는 사람을 일터에서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근은 성공에 한 표를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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