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발병 10년, 생존을 자축하며
대전·충남·세종 지역에 11일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대전지방기상청은 이날 오후 7시를 기해 당진, 서천, 홍성, 보령, 서산, 태안 등 충남 서해안 6개 시·군에 강풍주의보를 내렸다.
이 지역에 초속 10∼16m의 강한 바람이 불겠고, 내륙에도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 2015년 5월 11일 자 연합뉴스
서울에서 당진으로 오는 차 안의 라디오에서도, 집에 도착해 틀어놓은 TV에서도 연신 ‘강풍’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상상도 못했던 암 판정, 예상 병기(病期)에 대한 소견과 다음날 이어질 추가 검사 안내를 들으며 넋을 놓은 와중에도 돌풍 소식이 귀에 꽂혔다. 어차피 다시 병원에 와야 하는데 왜 다시 가냐며 부모님에게 가기 싫으면 우리 집에라도 있자고 말리는 친구에게 “강풍이 분다는데 뭐라도 해야지”라며 굳이 당진행을 고집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서울에서 추가 검사가 잡혀있는데, 더욱이 거센 바람이 계속 분다는데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굳이 다녀오겠다니. 지푸라기나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월세 살이 주제에 늘어지게 집 걱정을 하며 나서는 나를 친구는 굳이 잡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신문지를 구해 베란다 창문에 붙이고, 청색 테이프를 X자로 요리조리 붙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평생 가장 치밀하고 섬세한 재난 대비 행동이었다. 내게 닥친 불행을 그렇게라도 잊고 싶었나 보다.
다음 날, 새벽 세시쯤인가 다시 서울로 향했다. 비행기 운항도 조심해야 할 정도의 거센 바람으로 제멋대로 돌아가는 핸들과 씨름하기만도 바빴지만, 희한하게 무서웠다는 기억은 없다. 당시를 생각하면 몽롱하고 흐릿하다고나 할까, 마치 꿈을 떠올리는 느낌이다. 상황에 어긋남 없게 말하고 행동했지만 마치 로봇처럼 감각 회로는 정지된 채 보낸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암 발병은 내 인생에서 ‘설마’라는 단어를 빼버리게 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20명 중 한 명은 암 유병자라고 하지만 그 5%에 내가 들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더랬다. 가슴에 기분 나쁜 간헐적 통증이 계속됐을 때에도, 초음파 1차 소견에서 “모양이 예쁘지 않아 암일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설마’를 놓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기보다는 나마저 ‘혹시’라고 의심하는 순간 현실이 될까 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부정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찢어져 꿰맨 적 한 번 없는 나였다. 모르긴 몰라도 2015년 한 해 동안 주사 맞은 횟수가 48년간 살아오며 맞았던 그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매주 한번 피검사, 2주나 1회 간격으로 항암주사를 맞는 반년 동안 내 혈관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다. 항암 약 배출에 이온음료가 좋다고 해서 주사를 맞기 전 2리터짜리로 한 통씩 비웠다. 지금도 파란색 이온음료만 보면 살짝 속이 거북해진다.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나니 꼬박 10개월이 지났다. 모든 치료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학교로 복직했다. 아직 자라지 않은 머리에 모자를 쓴 채. 주위에서는 후유증을 염려하며 더 쉴 것을 권했다. 바닥난 체력도 심란하고 가발을 쓰고 출근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넘치는 시간이 두려웠다. 당시 나에게 시간은 여유가 아니었다. 재발, 전이에 대한 두려움, 유병자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답도 없는 사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몸이 힘든 것을 택했다.
치료 후 3년, 안도의 한숨 한번 쉬고(내가 겪은 암은 3년 내 재발률이 높다), 5년차에는 종양외과 검진을 마치며 조금 더 마음 놓았고 지난해 다니던 상급병원을 ‘졸업’하면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실감했다.
지인들은 “이 정도면 완치 판정 받은 거지”라는 말을 하지만 나는 그냥 암 경험자로서 치료가 끝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은인자중이 아니라 완치나 극복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더 억지를 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느새 암 발병 10년째가 되었다는 사실도 우연히 알아차렸을 만큼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몸 한 구석이 며칠간 편치 않으면 벌써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올해 초에도 가슴 통증이 계속되자 검진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고, 이상 없다는 결과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편히 숨을 쉬었다. 극복은 무슨, 잊고 사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2025년 5월 10일, 만 10년이 되는 날 당진천변을 걸었다. 올해는 유독 주말 날씨가 심술궂다. 불어오는 바람에 목 주위가 서늘하여 집에 돌아와 스카프를 찾아 둘렀다. 생각보다 바람이 꽤 부는지 현수막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바쁘게 날리며 시야를 가린다. 천변 양쪽, 모내기를 앞두고 물을 가득 대어놓은 논에 호수처럼 잔물결이 일렁인다. 이날의 풍속은 초속 5미터, 나뭇가지가 살랑거리는 정도의 바람이니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체감이다. 하지만 강풍주의보에 해당하는 돌풍조차 실감할 수 없는 시간을 겪었던 나로서는 마냥 당연하게만 생각되지 않는다. 바람을 바람으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