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포비아가 생겼다

- 발가락과 복숭아뼈를 사수하라

by 가을투덜이

말 그대로 내일모레면 환갑이다. 어느새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대한 잔치도 해주는 나이가 돼버렸다니, 격주로 요양병원 계신 아버지에게 방문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다지 삶의 변화가 없는 나는 특별히 나이 체감을 할 일이 없었다. 물론 방금 양치를 했는지 가물가물하고(자연스럽게 한 번 더 하면 된다), 거울 속 내 모습에 깜짝 놀라고(되도록 거울을 안 보고 산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다녀야 할 병원과 약 종류가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자식도, 배우자도 없으니 그들로 인한 삶의 변화를 실감할 일도 없고 하고 있는 일 역시 나이와 무관하니 더욱 그날이 그날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염두에 둔 생활 관리에 무심한 편이다. 여전히 떡볶이나 국수 같은 탄수화물에 정신 못 차리고 좋아하는 산책만 간신히 붙들고 있을 뿐, 5,60대에 필수라는 근력이나 유연성 운동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등산도 곧잘 했었는데 지금은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을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난다. 같은 자세로 오래 눕거나 앉아 있는 것이 건강에 가장 나쁘다는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바로 그거다. 꼼짝 않고 둔각으로 누운 듯 앉아 있기.


중병을 앓았으면 정신 차릴 법도 하건만, 반백년 넘게 갈고닦은(?) 습관의 벽은 쓸데없이 튼튼해서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살고 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변에서 경고등이 깜박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봄의 일이다. 체험학습을 앞둔 사전 회의에 한 살 많은 동학년 선생님이 발을 절뚝거리며 참석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올 때 모서리에 부딪혀 새끼발가락에 금이 갔다는 거였다. 그런 상황이면 종일 걷는 활동은 피해야 함에도 저학년 담임이라는 책임감으로 교과전담 선생님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체험을 마쳤다. 저절로 접합되기를 바랐지만 교실 안에서 계속 발을 쓸 수밖에 없어서 그랬나, 결국 심을 박는 시술을 하고 두 달쯤 휴직해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이번에는 대학 동기의 발가락뼈 골절 소식이 들려왔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며 모서리에 부딪혔다는 사고 원인마저 정확히 일치했다.


데자뷔인가? 사는 지역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50대 후반의 여성이라는 점. 심지어 두 사람은 나보다 훨씬 세심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그런 그들조차 기상 직후는 충분히 방심할 만한 시간이다. 하물며 나이가 들면 없어진다는 아침잠을 여전히 달고 살며 허둥대는 나에게 이건 높은 확률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당시 내가 취한 조치는 아침을 침대에서 맞이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잠자는 장소를 거실 소파로 옮겼다. 안 그래도 거실에서 TV를 보다 잠드는 경우도 많았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또 다른 친구와 한 살 아래 후배가 각각 비보를 전해왔다. 친구는 집안 무언가에 부딪히며, 후배는 걷다가 발이 꺾였는데 똑같이 복숭아뼈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둥글고 커다란 뼈가 그 정도의 충격에도 부러질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 부위는 시술도 쉽지 않아 장기간 깁스를 하고 붙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컸다. 첫 한두 주는 가급적 꼼짝 않고 지내야 한단다.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접합 정도를 관찰하고 재활치료도 해야 하니 목발을 짚거나 다른 사람의 부축은 필수, 혼자 사는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이젠 의자에 걸리기만 해도 나가 서러운 새끼발가락

끝인 줄 알았건만, 다가오는 6월 연휴 오랜만에 40년 지기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기차로 갈까, 차로 갈까 객실을 하나로 할지 두 개가 좋을지 단톡방에서 치열한 대화가 오가던 중 한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아침에 의자 다리 걸려서 새끼발가락 나갔다. 늙어서 맨날 고장 나”라는 서러움 가득한 글과 함께.


50대 여성들의 골절 사고 통계수치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주변에서 벌어진 다섯 건의 사고는 그 어떤 자료보다도 내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숫자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일 당장이라도 나한테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되었다. 편히 움직일 수 없고,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오랜만에 계획한 즐거운 여행 계획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사고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공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커졌다.


집안의 예상 위험 구역을 살펴보았다. 침대 모서리, 덜 닫힌 서랍 끝 부분, 가구나 의자다리, 무심히 열려있는 문과 오가며 스치는 싱크대 가장자리. 의식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날카롭고 뾰족한 부분이 꽤 많았다. 모든 직선이 마음만 먹으면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보였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처럼 모서리 보호대를 대볼까, 실내에서 신는 슬리퍼를 앞이 막힌 것으로 바꿔볼까, 뾰족한 부분마다 야광 스티커를 붙여둘까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했지만 좀처럼 마음에 차는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호대를 붙이자니 끝이 없고 앞이 막힌 슬리퍼를 하루 종일 신을 생각하니 이번에는 무좀이 걱정되고, 내가 아는 모든 사고는 밝은 날 일어났는데 야광 스티커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사실, 모서리만 피한다고 될 일인가. 눈앞에 뻔히 있는데도 살피지 못하는 흐트러진 집중력과 이제는 슬쩍 부딪히거나 접질리기만 해도 부러지는 골밀도가 더 문제일 텐데. 세상사는 모든 이치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정답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상황 탓을 먼저 하고 있으니 정신을 덜 차렸나 보다. 나는 발가락과 복숭아뼈를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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