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왕관을 쓰고 견디는 무게

- 반백년 넘어도 어려운 어른 되기

by 가을투덜이

왜일까, 요즘 들어 하루하루가 몽롱하게 느껴졌었다. 제시간에 출근하여 주어진 수업과 필요한 업무, 사적인 모임까지 구멍 없이 하고 있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발이 땅에서 한 뼘쯤 떨어진 채 걷고 있는 기분이랄까, 분명 나의 일상인데 내가 빠진 채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더위 탓, 나이 탓도 해보고 ‘정신 줄 놓기 직전인 걸 보니 학기말이 다가오고 있군.’ 가볍게 넘기면서도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 중에 울린 핸드폰, 아버지가 입원 중인 ‘서울 00 병원’ 임을 확인하자마자 언제나처럼 총알처럼 달려 나가 전화를 받았다. 상태가 위중하여 당장 전원하지 않으면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담당 의사의 말. 급한 수업과 업무를 조정하고,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서울로 달려가는 모든 시간 역시 흐릿하기만 했다.


당황하거나 허둥댔던 것은 분명 아니다. 5년 전 아버지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간 당시처럼 혼란스럽지도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지도 않았다. 몸은 바빴지만 철저한 계획 형 인간답게 내가 할 일, 가족과 나눌 대화, 병원에 확인하고 전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차곡차곡 점검했다. 다만, 그렇게 기민하게 움직이는 내가 나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았던 걸까, 결정해야 해야 하는 것들이 버거웠던 걸까, 돌이켜 생각해도 묘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건 이제부터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안전장치였는지도 모르겠다. 완치가 불가능한 아버지, 나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적극적 치료? 증상의 완화? 삶의 질을 염두에 둔 최소한의 조치? 가족 모두가 나의 입만 바라보고 있음을 알기에 주저할 여유 따윈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방향을 결정해야만 했다. 일단 아버지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자. 뿌옇고 희미했지만 그렇게 정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아버지를 보기도 전 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주치의가 아버지에게 비위관(주로 음식물이나 약물 공급, 위 내용물 제거, 위장 내 압력 감소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관, 콧줄이라고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을 삽입하려 올라오고 있으니 말려보라는 것. 열흘 전 정체불명의 출혈 증상을 보인 아버지, 2년 전 같은 증상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온갖 검사를 감당하기 정말 힘겨워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양병원에서 금식하며 출혈을 잡아보려 했는데 쉽게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해 금식이 반복되니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져 산소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너무 힘들어”

마스크 너머로 아버지가 가늘디가늘게 말했다. 눈빛이 한없이 무력했다.

“··· 식사를 못 하시니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거야. 영양제 들어가고 있으니 괜찮아. 아버지, 조금만 더 우리랑 있자.”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이 실재처럼 느껴졌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몽롱했던 덕분일까. 내가 나를 연기하듯 아버지를 토닥일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담당의사에게 출혈 치료보다 삶의 의지 회복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의견을 강하게 전달했다. 투약을 중지하고, 콧줄도 삽입하지 않기로 했다. 금식도 풀어달라 했다가 그것까지는 나도 겁나 주말까지 지켜보자 말을 바꿨다.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은 식사라는 즐거움을 당장 되찾아드리고 싶은 마음과 다시 출혈이 일어날까 두려운 마음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따님이 요구한 모든 조치는 치료 관점에서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아셔야 해요. 보호자 분 마음 편하자고 내린 결정이 아닌지 잘 고민해 보세요.”


주치의의 말 한 글자 한 글자가 뾰족하게 날아왔지만 다행히 흐린 안개가 장막처럼 나를 둘러싸 정통으로 꽂히지는 않았다. 되려 마지막에 철회한 식사 조치만 자꾸 목에 걸렸다.

‘혹시 아버지가 내일이라도 눈감으면 마지막까지 배고팠던 기억만 가져가게 될 텐데. 그냥 원 없이 드시게라도 해드렸어야 했나.’ 내 입에 밥이 들어갈 때마다 자꾸 생각이 났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5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노인, 완치는 불가능한 상황, 누구의 도움 없이 걷기는커녕 식사도 온전히 할 수 없는 지경인 제삼자가 있다면 나 역시 처치가 뭐 중요할까, 사는 동안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리고 넘기기도 힘겨운 알약 따위 집어치워버리라고 말했을 것 같다. 차라리 내 문제였다면 결정이 쉬웠을까? 사실 모르겠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그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던 아버지는 금식이 풀리자 미음을 싹싹 비우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다. 아버지라고 뭐 다를까. 오늘은 힘겨워 허덕이다가도 내일은 기운을 차리고, 또 다음날은 주어졌으니 살아내는 우리와 마찬가지일 테지. 뭐 그렇게 흔들림 없이 명확한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겠는가. 당신 원하는 대로 결정한다는 것은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정답이 없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답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이런 일은 계속 생기겠지. 같이 상의하고 의견을 모아가겠지만 반갑지 않은 대표 왕관이 내게 주어져 있는 상황, 누구 하나 나의 답을 틀렸다고 하거나 점수를 매기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소중한 이들의 삶이 달린 결정이라 생각하니 그 무게를 견디기 쉽지 않다. 반백 살도 훌쩍 넘었는데 할 말인가 싶지만, 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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