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갓’을 지킬 수 있을까

- 류영진의 「갓이 사라진 세상」을 읽고

by 가을투덜이

어라? 화면만 내리면 가능했던 핸드폰 소리와 진동 변경 메뉴가 사라졌다. 망할 업데이트, 주기적으로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새로 고침 덕분이다. 안 하자니 찝찝해서 업데이트를 실행하면 나의 사용 능력은 예외 없이 다운된다. 간신히 익혀 사용하던 순서와 메뉴가 뒤죽박죽 되니 새로운 사용법을 알아내기 위해 늘 허둥댄다. 이럴 때마다 나는 ‘디지털 찌질이’가 된다.


예전에는 기계나 정보 다루는 능력이 남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했었다.(참고로 나는 교원 정보소양 1급 소지자다). 관심이 없어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신문물(?) 습득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런 자부심은 진작 사라진 지 오래이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기계와 프로그램의 작동법도 작동법이지만 디지털 사고방식으로 태세 전환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특히 각종 사용방법을 익히는 통로 수정이 좀처럼 쉽지 않다. 체계적 지식은 글자를 통해 쌓아야만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중요내용에 밑줄을 치며 익혀야 마음이 놓인다. 종이 사용설명서가 대부분 영상으로 대체된 요즘, 새로운 지식과 나 사이에 깊고 넓은 강이 놓여 있는 것 같은 무력감을 종종 경험한다.


조선 후기, 원석이 아버지에게 갓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두렵고 폭력적이었을까. 갓장이였던 그에게는 입에 풀칠할 방도가 사라지는 절망이고, 살아온 세상의 붕괴였으며 신(God)이 사라져 버린 암담한 세계로 추락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글 모임에서 만난 류영진 작가의 역사동화 「갓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지 못하고 이끌리듯 근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백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반의 상징이자 조선의 상징인 갓을 만드는 원석이 아버지는 양태장(갓의 차양 부분이 되는 둥글고 넓적한 양태를 만드는 장인.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쪼개 양태를 만든다.), 그것도 자타공인 조선 최고의 갓장이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 가득한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원석이도 이 일을 이어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원석은 날마다 쪼그려 앉아 결국 양반의 차지가 될 갓을 만드는 갓일이 싫다. 아버지의 대나무는 갓을 만들고 있지만 자신의 대나무는 다르게 쓰일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 믿는다. 어머니 역시 그런 원석을 지지하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당에 보내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어느 날 단발령이 내려져 아버지가 강제로 상투가 잘린 후 원식을 둘러싼 세상은 급변한다. 현재를 고집하던 아버지는 원식에게 “새로운 문물을 익혀 다른 세상을 꿈꾸라”라고 당부한 뒤 자신은 죽창을 들고 폭력적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세상에 맞선다. 동무이자 양반인 상욱은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달라진 세상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원식은 기회의 시대로만 여겼던 근대화의 다른 얼굴에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독립운동을 하며 자신만의 대숲을 일구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나이는 숨길 수 없는 건지 동병상련의 심정이라 그런 건지, 여러 등장인물 중 원식이 아버지가 눈에 밟혔다. 독서토론을 마친 후 같은 글 모임 회원이 알려준 국가문화유산 채널에서 갓 만들기 영상을 보았다. 양태장과 총모자장, 입자장이 함께 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갓. 신분이 높은 사람의 그것은 최소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이었다.

갓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아니 갓 제조 기술을 익히기 위해 들였던 공과 시간을 생각해 보라. 세상이 달라졌다고, 이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갓과 상투는 봉건시대의 상징이며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은 풍습이니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치부하는 세상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새로운 제도는 다정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1895년 을사개혁 이후 내려진 단발령에 따라 강제로 상투를 잘린 원식 아버지에게 신문물이란 폭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틈만 나면 OTT채널을 돌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여지없는 아날로그 인간, 여전히 책을 통해 만나는 세상과 생각이 가장 뇌리에 남고 소중하다. 짧은 영상으로 순식간에 전달되는 정보는 당최 되새김질이 어려워 소화가 힘들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문자나 SNS를 통한 사는 이야기만으로는 허기가 진다. 표정과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온기가 필요하다. 정보도 사람도 긴 호흡에 최적화돼 있는 내게 지금의 변화는 정말 숨 가쁘다.


하지만 달라지는 세상을 외면한 채 오로지 나만의 '갓'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다간 어느 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투를 잘린 채 갈길 몰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결국 갓을 만들던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원식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의병으로 나서며 아버지는 원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나고 보니 네 어미 말이 다 맞더구나. 조선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던, 조선의 변화는 이제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비는 왜놈을 뜻대로 조선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생각이다. 너의 배움도 그러길 바란다. 열심히 배우거라.”


강대국에 잠식된 것도 아니고, 대놓고 나의 변화를 강요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달라짐 없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 원식 아버지의 말을 나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디지털세상, 인공지능 시대로의 변화는 이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질과 기계만능주의를 외치는 이들의 뜻대로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만의 호흡과 속도로 새로운 세상을 열심히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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