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만의 사랑 고백

by 가을투덜이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 내 또래 중년들이 대부분 그러할 테지만 그중에서도 증세가 심한 편에 속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손을 잡거나 팔짱 끼고 다닌 기억이 없다. 좋고 나쁨을 큰 동작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 사이가 이토록 점잖은데(?) 이성에겐 어떠했겠는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던 연애에서도 나의 메마른 태도는 늘 갈등의 씨앗이 되곤 했다.


“도대체 사랑한다고 왜 말을 못 해” 하도 투덜대기에 술을 왕창 먹고 “그래, 사랑한다, 사랑해. 됐냐, 이 XX야”라고 내뱉어 차인 적도 있을 정도니 둔감병 환자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기 왜 그리 힘겨웠을까. 무엇보다 자라온 환경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 표현은 세 자매가 제대로 먹고 입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에 머물렀고, 마음을 주고받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군것질거리가 귀한 시절, 엄마가 튀겨준 도넛을 자주 먹었지만 힘들 때 품에 안기어 위로받은 기억은 없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권위적인 분은 아니었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였다. 속상해서 흘리는 눈물은 꾸중으로 돌아왔기에 무조건 삼켰고, 실수는 까닭을 살피기보다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하는 공식만 통하니 갈등이 쌓였다. 나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패배였고, 약함의 징표였으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젊음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나의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인이 된 나에게 중요한 화두는 옳고 그름이었기에 나와 상대의 감정을 돌아보지 못했다. 지인들은 진심보다 내 화법에 더 꽂혀 생채기가 났고, 영문을 모르는 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그들을 탓했다. 사랑해, 애썼어, 고마워라고 꼭 집어 말해야 진정성이 전달되는 사이라면 너무 옅은 거 아닌가, 그렇게 겪어봐도 날 모르나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주름이 깊어가며 각지게 전달되던 내 마음도 많이 둥글어졌다. ‘눈물은 약한 자의 것'이라는 꼰대 같은 사고방식도 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살아온 세월을 무시하지는 못해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은 여전히 쉽지 않다.


몇 년 전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선생님, 사랑해요”라며 하루 두 번 꼬박꼬박 고백(?)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러고선 빤히 바라보며 기다린다. 선생님도 어서 정해진 답을 해 주세요 라는 눈빛으로. 까짓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도 "나도 사랑해" 하면 되는데, 좀처럼 쉽지 않다. "고마워, 나도"에서 결국 멈춰버린다. 사랑해, 내겐 참으로 힘든 단어이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병원 생활을 하신 지 어느새 5년째 접어들었다. 살이 얼마나 내렸는지 신장이 178센티미터인데 몸무게는 50킬로그램 간신히 넘는다. 눈빛이 흐려지고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진 아버지. 내리막길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것 같아 당신을 만나는 하루하루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이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리거나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 어렵게 통화가 연결돼도 “다 필요 없어!”라고 짜증을 내실 때가 대부분이다. 조금이라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마무리되는 날이면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서거나 통화가 끝날 때쯤 나도 모르게 입이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지내느라 애쓰셨다”는 공식 마무리 멘트가 성에 차지 않았다. 내 마음이 조금 더 당신에게 가까이 닿기를 바랐다. 그래서였나, 어느 날의 통화 말미, 내 평생 아버지에게 하게 될 줄 몰랐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다음 주말 올라가서 얼굴 뵐게요.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알았어. 끊자.”


“아빠, 사랑해요.”


“···. 그래, 고마워.”


58년 만의 고백이었다. 침묵의 찰나, 몽롱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의식이 명료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고맙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 같았다. 통화를 끝내고 얼마 뒤, 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가 엄마와 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길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처음 한 ‘사랑 고백’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홍길동도 아닌데 도무지 사랑을 사랑이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뻣뻣함, 그 미련한 경직성을 뚫고 내 진심을 가득 전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아버지에게 오롯이 닿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백 못한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아버지에게는 퍽 자연스럽게 사랑을 전한다. 신기하게도 “아빠, 사랑해”로 통화를 끝날 때면 아버지가 나머지 식구들에게 직접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다.


“너랑 말하다 보면 왜 그리 찬바람이 쌩쌩 부냐”며 혀를 끌끌 차던 둘째의 58년 만의 사랑 고백, 병실 천장만 쳐다보던 아버지의 눈빛에 잠시나마 생기를 드리는 순간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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