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로는 나 열아홉에 왔다.
당시 아빠가 일하시던 현장에 병든 떠돌이개가 있었고,
측은한 마음에 아빠는 그 유기견을 병원에 데려가고 돌보셨다.
그 비용을 마련하려 직장 동료들에게 모금도 하셨다.(고 하셨다.)
대부분은 아빠가 부담하셔야 했지만.
쪼로는 그 개가 낳은 새끼들 중 가장 예쁜 놈이었다(고 하셨다.)
귀도 못 편 똥개 새끼처럼 귀여운 건 또 없기에
여고생 서인과 수는 보자마자
”헐! 쩔어~~~!!“하며 울다시피 호들갑스러웠고
손쉽게도 이름은 쪼로가 되었다.
그렇게 벌써 12년 세월,
지치지도 않고 삼각산을 휘젓던 야생동물 같던 쪼로도
병을 얻고 기운을 소진해 갔다.
그러던 하루, 엄마 아빠가 쪼로를 데리고 서울에 오셨다.
돌아다니기는 버거운 쪼로를 먼저 집에 뉘어둔 후에
나를 밖에서 만나서 밤늦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구 우리 할머니. 꿈쩍도 않고 여기 계속 누워있었어? 살이 많이 빠졌네. “
잠깐의 인사. 이따 더 쓰다듬어 줘야지ㅡ 하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빠가 쪼로 오줌을 뉘러 나갔다 오신다셨다.
그 길, 쪼로는 아빠 품에서 숨이 꺼졌다.
정말 꺼지듯 후우욱 내뱉은 마지막 숨에 대해 아빠는 여러 번 말했다.
마산에서 먼 길을 올라와 나까지 다 보고 인사도 한 후에.
우리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렸을까?
오래 예감한 이별이었기에 내게 마지막 인사를 챙겨 준 것이
그저 신기하고 기특하고 고마왔다.
마침 집에 유진이가 선물해 준 꽃이 있어 그 작은 몸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외국영화에서 본 어느 멋진 장례식처럼,
허름한 관을 둘러앉아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건배도 하고.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던 작은 존재, 김쪼로를 위하여!
어쩐지 올핸 꽃이 늦는다 싶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벚꽃이
차례 없이 한꺼번에 만개해 있는 특이한 봄.
2023년 3월 25일 밤 11시 15분 김쪼로 죽다.
김쪼로 김빅이랑 (싸우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