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잴 때마다 다른 혈압! 어떤 게 진짜 내 혈압일까?

혈압측정 방법

by 허간호사


언제까지나 20대일 줄 알았는데......
세월이 야속해....


직장에 들어가면 정규적으로 건강검진을 지원해주는 곳이 있다. 그렇지 않은 직장도 많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덕분으로 꼬박꼬박 매년 기본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일을 막 시작했던 20대 때는 건강검진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기본에 기본 검사만 포함되어 있는거다보니 그닥 도움된다고 생각든 적이 없었고 형식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하니 의미없던 건강검진이 의미있는 건강검진으로 바뀌는 슬픈 상황이 생겨버렸다.


20대에는 뭘 검사해도 정상이다. 피검사도 정상, 혈압도 정상, 운동을 안 해도 정상, 음주가무를 즐겨도 정상이다. 심지어 나이트 근무를 하고 퇴근길에 검사하고 가도 정상이다. 그때는 천년만년 20대 일 줄만 알았는데, 어느덧 30이되고, 40이 되어 있었다ㅠㅠ. 90살 할머니는 20살때 90이라는 나이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시간은 참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베짱이가 여름 내내 기타를 치고 놀다가 추운 겨울을 혹독하게 보내게 됐던 것처럼 나이가 들면 여지없이 탄로가 난다. 내가 내 몸을 잘 챙겼는지, 젊음을 믿고 방치했는지......


나이가 드니 기본 검사라고 무시했던 직장인 검강검진인데도 노란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한 번도 수축기 혈압이 115를 넘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걸핏하면 140도 넘게 나온다. 굳건했던 나의 혈액검사 수치는 나를 벌벌 떨게 만들었고 매번 검진을 하고 나면 자기반성의 시간과 다짐의 시간이 저절로 생겼다. 물론, 그게 1달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한 달짜리 경각심이어도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난 후 높아진 혈압에 충격을 받아 혈압기도 주문해보고 혈압도 측정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놈의 혈압은 어쩔 땐 낮게 나오고, 어쩔 땐 높게 나와 도대체 종 잡을 수가 없다. 혈압을 잴 때마다 달라지는 수치에 기계탓만 하게되고 뭐가 진짜 내 혈압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결국 혈압기는 구석 어딘가에 쳐 박힐지도 모른다....;;;;


왜 잴 때마다 달라요?
살아있으니깐요.. ㅎㅎ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움직이면 혈압은 올라가고 휴식을 취하면 내려간다.

혈압이 계속 바뀌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혈압은 잴 때마다 다른 게 맞다.


나는 안정시에 혈압을 재시라고 항상 말씀드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자고 일어나서

2. 화장실을 한번 다녀온 후(소변 후)

3. 침대에 누워 재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혈압은 안정시에 측정해야 한다.

2. 용변 본 후의 혈압이 더 안정적이다.

3. 혈압을 측정 시 상완의 위치가 심장의 위치와 같아야 한다.

4. 매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측정하는 것이 좋다.


계단을 가쁘게 올라온 후 혈압측정하는 건 옳지 않다. 가끔 외래진료를 보기 위해 오시는 분들 중에 오자마자 혈압을 재시고는 혈압이 평소보다 높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 움직였으니 혈압이 높아진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의미있게 봐야 할 혈압은 '운동시 얼마나 혈압이 높아졌느냐'보다는 '안정시에도 혈압이 얼마나 높으냐'이다. 때문에 심장박동수가 고요해진 안정된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


혈압을 재는 팔의 위치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세도 중요하다.

누워서, 앉아서, 서서 재는 혈압이 크게 차이가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긴 하지만 굳이 더 정확한 혈압을 재고 싶다면 심장의 위치와 혈압을 재는 팔(상완= 혈압커프를 묶는 부분)의 위치가 같으면 같을수록 정확하다.

어렵고 헷갈린다면 그냥 누워서 재는 것도 방법이다. 앉아서 잰다고 부정확한 것은 아니다. 만세를 하고 혈압을 재는 사람은 없을테니 편안하게 책상에 팔을 걸치고 재면 된다.


어쩌다 한 번씩 측정해 보는 것도 훌륭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혈압관리를 하고 싶다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상황에 혈압을 재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침대에 누워 혈압을 재세요.'라고 말씀드린다. 밥을 먹고 재면 혈압이 조금 올라가기 때문에 눈 뜨자마자 용변만 본 후 다시 벌러덩 침대에 누워 주섬주섬 커프를 감으면 눈 떠지지 않는 아침, 잠시동안 단잠을 잘 수도 있다.


너무 억지로 정상 혈압을 맞추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전 평상시엔 정상인데 운동하고 재면 꼭 고혈압으로 나온다구요!



입원중인 환자들의 혈압체크 시간에 혈압을 쭉 재다보면 높게 측정되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면 간호사는 의례 침대 머리를 높여주고 '앉아서 쉬고 계셔라. 이따 다시 와서 재보겠다'하고는 30분쯤 다시 체크한다. 두번째 잰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특별히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높은 경우에만 의사에게 호출한다. ( 그렇다고 기록까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똑똑한 간호사일수록 의사를 괴롭히지 않는다. ㅎㅎ)


운동할 때만 혈압이 높게 나온다고 간헐적 고혈압이라는 진단명을 붙이며 혈압약을 처방했다고 생각해보자. 운동할 때는 괜찮을지 몰라도 평사시에는 저혈압이 와서 일어서지도 못하게 될거다. 억지로 정상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안정을 했는데도 높은 혈압인 경우에만 고혈압이라는 진단이 붙는거다. 아무리 재측정하고 재측정해도 정상혈압이 되지 않는 분들이야말로 약물치료가 필요한 분이 되는거다.


혈압은 늘 변한다. 아까는 128/775mmHg지만 바로 다시 재니 117/72mmHg가 나왔다? 어느게 내 진짜 혈압인가? 기계가 이상한가?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 평균이 중요하다. 혈압을 잴 때 충분히 안정적이었는지, 혈압을 측정하는 팔 부위의 옷이 너무 두껍지는 않았는지, 팔 높이가 심장과 너무 많이 차이나지는 않았는지, 측정중에 말을 하거나 움직이진 않았는지 확인해보자. 모두 이상이 없다면 잘 기록해 두고 평균적으로 내 혈압이 어느정도 인지를 확인해보면 된다. 만약 지속적으로 140/90mmHg 이상으로 나온다면? 경계심을 갖고 생활습관 개선에 돌입해야한다.




이번 글로 구박만 당하고 어딘가에 박혀있던 혈압계를 구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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