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작은 이러했다

by 이작가야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늘 막연하게 자신이 없던 일이었는데 용기를 냈달까요?

제가 살면서 느끼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은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잘하기가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그 일을 해보고 싶은 어느 순간이 왔습니다.


엄마들은 공감해 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출산과 육아라는 것이 결과는 순간 순간의 어떤 것일지 몰라도,

그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 참.. 짧은듯 긴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평생이요.


그리고 저같은 경우에는 그 여정을 제가 선택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두 아이를 모두 시험관시술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몸에 어떠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결혼 초반에는 신혼의 시간을 즐기려고 하다가

막상 아이를 만나고 싶어지자 하늘에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원인불명 난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내린 큰 결정이었달까요.


요즘은 그래도 제가 활동을 하러 다니면 시험관시술로 아이를 만난 분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 경험의 공유라는 것이 참 신기한 유대감을 갖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단, 몸이 어디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내 선택으로 주사기를 내 피부에 매일 꽂는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후기를 계속 찾아보다보니..

저는 꽤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뇌 회로를 빨리 돌리는 편이라 많이 슬프지는 않았는데

너무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생각보다 더 간절했고 더 긴 시간이었고 그만큼 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병원에 처음 찾아갔을 때는 하도 뉴스에서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니

모든 절차가 순식간에 진행될 줄 알았었는데 다른 병원들보다 대기도 훨씬 길고 과정이 복잡했습니다.

나중에는 그것도 익숙해져서 분명히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또 몇시간 기다리겠구나 하며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며 노력을 한 끝에 지금 두 예쁜 딸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닌 이유는 병원의 문제가 아니었고 그냥 제 상황에 맞게 사는 지역의 병원으로 가야하다보니 여기 저기 돌아다니게 되었네요.

한 병원은 이미 유명한 메이저 병원이었고 다른 병원은 지방에 있는, 거의 그 지역에서 몇 없는 난임병원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둘 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병원에 가는지도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냥 인생사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알 수 없는 일이더라구요..


(이 글을 남기며 혹시나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시술을 진행중이시며 오래 아이를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면,

너무 너무 힘드시고 마음이 답답하시겠지만 작더라도 좋은 기운을 전달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예쁜 천사가 올 때까지 화이팅입니다.)


KTX를 새벽부터 타고 왕복하며 주사기를 한가득 보냉가방에 들고다니던 그 순간들,

배아를 화면으로 확인하며 수술대에서 이식하던 날들,

후에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며 피를 뽑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던 그 모든 과정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어떻게, 그 전에는 누군가의 딸로 살면서 덜 단단했던 제가

갈수록 단단해지고 더 생존능력이 커지고 있는지..?

엄마로 사는 인생이 무엇일까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삶의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모두가 다를 것이며 그 깊이도 감히 가늠할 수 없겠죠.

각자의 무게는 각자 본인만이 가장 잘 알 것이며, 답도 본인이, 책임도 본인이.


저는 제가 시작한 이 육아가 그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잘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끊임없이 기록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인생은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또 저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인연들이 조금은 더 무탈하고 즐겁게 오늘을 지났으면 합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엄마라는 자리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게 잘 하루를 보내볼게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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