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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서 Oct 16. 2021

고구마와의 전쟁

 

“왜 이렇게 빨게? 불타는 고구마 같아”  

“맞아 맞아”  

“그런 소리 하면 못써.”


엄마는 나와 민지를 흘겨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다행이다.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 다 제대로 있네.”      


1999년 8월의 무더운 여름날, 나에게 동생이 한 명 더 생겼다. 두 살 터울 동생 민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던 순간을 기억할 리 없는 나는 엄마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이 과정이 생소하고 이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수박처럼 큰 엄마의 배를 뻥! 하고 뚫고 나온 듯한 느낌이랄까.      


한동안 그 녀석을 이름 대신 고구마라고 불렀다. 일종의 질투심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동생 민지에게 엄마의 관심을 빼앗긴 걸 일기장에 쓸 정도로 고민했었는데, 이런 나에게 고구마의 등장은 유명 연예인이 우리 집에 365일 상주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고구마는 어딜 가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환경 호르몬의 영향을 받았다더니 속눈썹도 나보다 길고 숱도 많아서 눈이 훨씬 커 보였다. 또 조그마한 손은 마치 고양이 같이 앙증맞았다. 게다가 엄마 나이 마흔에 찾아온 거라 어딜 가든 대접받는 복덩이 인생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성가신 존재였다. 고구마는 매일 콩알만큼만 자라서 울기만 하고 누워있기만 하는데 또 챙길 것은 많아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탓에 민지와 집에 둘이 있는 날이 많아 밥을 챙겨 먹는 일도, 숙제도, 빨래도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고구마 돌보기까지 떠맡아야 하는 건 조금 분했다. 내 맘도 모르고 엄마는 동생이니 잘 챙겨주라면서 분유 타는 법과 목욕시키는 법을 알려줬다. 고구마가 기어서 어디든 올라가기 시작했을 무렵엔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육아가 나의 일상을 헤집고 들어왔다.      


어느 날은 고구마 때문에 친구와 시내에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을 깬 일이 있었다. 고구마만 보면 화가 치밀어서 없는 사람 마냥 신경도 안 쓰고 옆에 올라치면 저리 가라고 손으로 밀어냈다. 고구마도 몇 번 시도를 하더니 내 반응이 내심 서운했는지 포기하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 후로 1시간쯤 흘렀던 것 같다.      


띵-동.


벨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현관에 발을 내딛는 순간, 고구마는 6개월 인생에 가장 빠르게 기어갔다. 그리곤 엄마 품에 안겨서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엄마. 엄마. 민영이 저리 가래. 저리.”


 얼어붙은 나와 울고 있는 고구마. 그리고 그런 둘을 엄마는 번갈아 봤다.      


“그랬어? 아가 울지마. 엄마가 언니 혼내줄게”      


거짓 변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고구마가 서랍 속 옷들을 죄다 빼서 여기저기 늘어놨기 때문에 믿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엄마는 고구마를 안은 채로 언니가 그러면 쓰겠냐는 말로 시작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잔소리를 했다. 엄마 품에서 나를 구경하던 그때 그 고구마는 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사람 베스트 3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고구마는 동생 민지가 주로 맡게 되었다. 일종의 접근 금지 명령 같은 거였다.


그래도 고구마가 마냥 밉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고구마의 무지를 이용해 놀리는 건 꿀잼이었다. 말은 잘하는데 글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방송 중간에 흘림 자막이 나올 때마다 “고구마 바보라고 써 있어!!!”라며 놀려댔다. 그럴 때마다 고구마는 엄마한테 쪼르륵 달려가 언니가 또 놀린다고 이르곤 했다. 장점도 있었다. 하도 장난을 쳐서 그런지 고구마가 가장 먼저 외운 단어는 고구마의 진짜 이름 민영이었다.      


고구마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할머니 댁에서 5년을 살다 다시 집으로 왔다. 돌아온 고구마는 5살 주제에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엄마만 졸졸 쫓아다니던 아기가 이제는 화장실에서 걸레까지 빨아올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랑 살면서 집안일을 같이 하다 보니 철이 빨리 든 것 같았다. 말투도 할머니를 빼다 박아서 5살이랑 대화를 하는 건지 할머니랑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다.      


이 무렵 고구마는 데리고 다니기 참 좋았다. 고구마를 데리고 나가면 친구들이 귀엽다고 과자라도 하나씩 사줘서 나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고구마는 롯데리아 햄버거를 2개나 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는데(지금은 불가능하다), 나랑은 과자 때문에 자주 다퉜다. 이기는 건 언제나 나였고 논리는 항상 같았다. 내가 키가 더 크니까 영양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궤변이었다.      


시간이 흘러 훌쩍 커버린 고구마는 예전의 일을 꺼내면 언제 그랬냐며 반문한다. 다행이다. 고구마가 내가 질투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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