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서 Mar 11. 2022

나는 불편한 사람일까요?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끄러운 나의 고백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질문이며 프로그램을 끝낸 후 공백기가 돌아오면 언제나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내가 불편하냐고.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해 돌직구로 내 뱉는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미화된다는데, 그럼에도 살아남은 생생한 장면이 몇 개 있다. 일하면서 화를 냈던 순간들이다. 누군가와 크게 갈등을 겪었던 순간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부끄럽지만 꺼내보자면 나는 사회 초년생 시절 담당 짝 피디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맛집을 소개하는 10분 남짓한 코너였는데, 매번 편집이 늦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본에 대해 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서로 팽팽한 기싸움을 하면서 내가 영상에 대해 일일이, 하나하나 지적을 하니까 발끈한 피디가 “네가 그렇게 잘났어?” 라고 소리쳤다. 너무 황당해서 “그래!!!!”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뒤따라온 피디가 다른 작가들도 다 있는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크게 한 번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나는 짝 피디가 한 번 바뀌었다. 



피디하고만 싸우진 않았다. 시간이 흘러 허리연차라고 불리는 정도가 됐을 무렵 나는 작가 선배하고도 싸운 적 있다. 기획부터 일을 하던 나와 다르게 중간에 합류한 작가 선배였는데, 예능이 처음이라 적응 속도가 꽤 느렸다. 내 아래로는 연차 차이가 큰, 입봉 전의 작가들이 있었고 나는 후배들의 일을 체크하면서 위로는 예능에 서툰 선배의 일까지 떠맡게 됐다. 심지어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주말 답사까지 나의 몫으로 돌아왔다. 과부화가 걸렸고 일을 분담해달라고 했지만 크게 바뀌진 않았다. 이 무렵 스트레스로 매일 반갑 정도의 담배를 폈고 선배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쌓여갔다. 이런 상태에서 그 선배와 선발대로 촬영 준비를 하다가 촬영 전날 크게 한 판 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을 왜 정확하게 하지 않느냐, 선배면 조금 더 꼼꼼하게 체크해줘야 하지 않느냐”라고 돌직구로 날렸다. 그 이후로는 데면데면 지내다가 시청률 하락으로 전체 제작진이 교체됐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내가 불편해서인지 갈등이 있던 프로그램 같은 경우엔, 이후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모든 프로그램이 다 그랬던 건 아니고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지만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방송계에서는 굉장히 마이너스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혹시 나의 이런 모난 성격 때문에 선배들이 나를 피하나?라고 고민을 한 적도 있다. 특히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못되게 굴고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피해가 오니까 그런 부분을 잘 용납하지 못했다. 일을 할 땐 개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몰두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느 순간 갑자기 분출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부끄럽다. 그리고 후회가 된다. 조금만 참을 걸, 조금만 넘어갈 걸, 조금만 돌려서 말할 걸…  이런 생각들이 나를 자꾸 쪼그라들게 만든다. 부끄러워서 작가 친구들에게도 단 한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나의 이런 모남에도 선배들이 잘 이끌어줘서 나름 오랫동안 작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건 엄청난 행운이다.  



불편해지는 게 불편한 요즘의 나는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불편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트러블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짜증나게 한다 할지라도 100번 참고 넘어가자. 모두가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라고. 물론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이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검진이 부른 쓸모없는 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