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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06. 2023

낯설면서 친숙한 팔레르모의 맛

[시칠리아 여행 9] 팔레르모 음식 일기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제일 불편한 게 밥 먹는 일이다. 입맛이 유독 까탈스러워 낯선 요리나 고수 향내라면 질겁을 해서도 아니고 한국식 김치 찌개만 찾아서도 아니다.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혼밥 하기에 적합한 식당은 제한이 있고 해서 그렇다. 좀 괜찮은 식당은 혼자 들어가기 뻘쭘하기도 하고, 메뉴 선택도 제약이 있다. 그래도 미식의 고향 시칠리아를 그냥 뜨긴 좀 그렇다. 시칠리아 음식은 이탈리아라는 틀로만 묶기는 어려운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     

시칠리아 길거리 음식 허파버거와 판매대

팔레르모 거리를 다니다 보면 현지인이 줄을 서 있는 노점상을 종종 만나게 된다. 명물 길거리 음식인 허파 버거를 찾는 사람들이다. 이 거리 음식은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싸고 맛있어, 점심때면 현지인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음식은 빵 사이에 시커먼 고기 조각 비슷한 것이 들어있을 뿐 너무나 간단해 정말 볼품이 없다. 쇠고기 중에서 허파 부위가 들어가는데, 한쪽에 쌓아둔 허파 삶은 것을 기름에 잠깐 담가 건져내 빵 사이에 넣고 치즈 가루 뿌리면 조리가 끝이다. 일반적인 버거에 들어가는 기름진 고기 맛이 아니라, 마치 샤부샤부와 비슷한 촉감이 느껴진다. 가격도 2-3유로로 매우 저렴해 서민들의 점심용으로 제격이다. 먹어보니 아주 열광할 정도는 아니지만 맛은 괜찮았다. 허파라는 부위에 대한 상상력만 잠시 자제한다면 그렇다. 이탈리아는 고기의 온갖 부위를 버리지 않고 요리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팔레르모에는 가격이 싸고 맛있는 식당이 많다. 숙소로 잡은 구도심 콰트로 칸티 부근에도 추천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비쏘 비스트로(Bisso Bistrot)였다. 이곳은 현지인들 사이에 그냥 단테서점으로 불린다. 이전에 유명 서점이 입주해 있던 곳이고, 지금도 서점의 인테리어와 Libreria Dante라는 간판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이 서점 아닌 서점을 처음 방문하던 날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라는 이름으로 가지가 들어간 파스타에 하우스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런데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8유로에 불과해 이른바 서유럽 국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면은 현지인이 좋아하는 ‘알 덴테’로 좀 덜 삶아 거친 촉감이 느껴졌지만, 나름대로 입맛에는 맞았다. 단테 서점은 팔레르모에 머무는 동안 가장 자주 이용한 단골 식당이 됐다.      


체류 중 단골 식당 단테서점

현지의 다양한 맛을 시도하고 싶다면, 시내의 발라로 시장이 좋다. 이곳은 음식도 다양하고 싸고 맛있는 걸로 정평이 있다. 특히 주말에 가면 발라로 시장은 한쪽에서는 공연이 벌어지고, 여기저기서 음식 굽는 연기와 냄새가 자욱해 거의 축제판이다. 시장에 처음 갔던 날에는 오징어 요리를 주문했다. 오징어를 빵가루와 견과 등으로 속을 채운 후 토마토소스를 발라 통째로 익힌 것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로 둘러싸인 만큼 싱싱하고 다양한 해물이 많이 나 해물 요리가 이 땅의 풍취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음식과 곁들인 로컬 맥주는 잘 어울렸다. 작은 병인데도 금방 취기로 알딸딸해진 것이 9도나 되는 강한 도수 때문인지 이국적인 시장의 흥겨운 분위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발라로 시장의 밤은 흥청망청한 축제 분위기다 


팔레르모를 떠나기 전 다시 찾아간 날에는 점심이라 파스타를 선택했는데, 가지와 더불어 황새치가 들어가 바다의 향이 강하게 풍겼다. 파스타는 아무 재료나 잘 활용해 뚝딱 만들어내는 서민적이고도 창의적인 조리법이다. 2차 대전 때 시칠리아 인들은 식재료 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어리를 조리해서 먹었다. 시칠리아의 대표 파스타가 된 정어리 파스타는 한국의 부대찌개처럼 이처럼 궁핍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이탈리아의 다양하고 복잡한 지역 특성만큼이나 다채로운 조리법이 존재하는 듯하다.      

발라로 시장에서 먹은 오징어 요리와 황새치 파스타, 그리고 약간의 추억

비록 구질구질한 홀로 여행객 신세지만 한 번쯤은 우아한 식당에서 만찬을 즐겨보고 싶었다. 팔레르모 체류 기간 막판에 셰프인 지인이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는 현지 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일정을 보니 이튿날은 식당이 휴무라 하루밖에 가능한 날이 남지 않았다. 마침 추천 식당 중 한 군데가 지척에 있어 이른 시간을 골랴 불쑥 찾아갔더니, 좌석은 모두 텅 비었는데도 예약이 다 찼다며 매몰차게 거절한다. 결국 다른 데 가서 붐비는 좌석 한편에서 후다닥 먹고 나왔다. 홀로 여행객의 비애를 살짝 체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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