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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n 18. 2023

시간 여행과 현실 여행

[시칠리아 여행 7] 그리스 고대 도시 아그리젠토

   오늘은 아그리젠토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시칠리아 섬 서북쪽 끝인 팔레르모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내려가 남쪽 해안에 위치한 먼 도시라, 과연 당일치기가 가능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근데 시칠리아 거주자 말로는 교통이 엉망인 여기서는 팔레르모에서 당일치기가 더 편리하단다. 교통편을 알아보니 팔레르모 중앙역에서 기차로 두 시간이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어 시간상으로는 팔레르모 인근의 에리체 보다 덜 걸리는 셈이다. 시칠리아에서 교통 일정은 믿을 바가 못 된다고들 하는데, 한번 요행수를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 유럽 전역에서, 심지어 그리스에서도 고대 그리스 유적을 만나긴 쉽지 않다. 폐허가 되어 사라진 건축은 물론이고, 그나마 남은 유적도 후대인 로마 시절에 재건축을 거쳐 어디까지가 그리스 시절 것이고 어디가 로마 시절에 개축한 부분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분간하기 어렵다. 아마 이 때문에 건축사에서도 이 시절을 그레코-로만 건축이라고 퉁쳐서 부르는 듯하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드물게 아그리젠토에는 무려 BC 5세기에 지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들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그것도 교과서에서 보던 그리스 초기 양식인 도리아식 건물들이다. 그동안 그리스-로마 건축은 다소 싫증이 날 정도로 자주 봤지만, 이만하면 하루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지도에서 푸른색 표시로 된 곳에 그리스 도시가 있었다. 아그리젠토는 남쪽 해안 노란색 표시가 된 곳이다.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웬 그리스 건축이냐고 묻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스의 전성기 시절 시칠리아와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앞꿈치와 뒤꿈치쯤에 해당하는 칼라브리아와 풀리아, 그리고 시칠리아는 그리스인의 주요 정착지였다. 이곳은 당시 마그나 그라이키아, 즉 대그리스라고 불렸으니 그리스의 주요 도시였던 셈이다. 그 유명한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시칠리아섬 시라쿠사에서 태어난 사람이니 그 시절 시칠리아의 비중을 짐작할 만하다.      

왼쪽부터 제우스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 헤라 혹은 주노 신전.

기차는 팔레르모 중앙역을 벗어나 해안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름철 휴양지 같은 분위기의 바닷가 마을에서, 농가와 개울, 포도밭이 들어선 야트막한 경사지, 험한 산악지대까지 차창 밖으로 수시로 변해가는 시칠리아의 풍광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전해 듣던 것과 달리 예정대로 2시간 남짓만에 기차는 아그리젠토 역에 도착했다. 낯선 시칠리아 마을에서 그리스로 가는 시간 여행이 시작됐다. 유적지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밖으로는 나지막한 울타리가 쳐진 발굴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적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고대에는 외침의 방어가 도시 설계에서 가장 중요했으니, 당연한 입지 선택이었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당시의 번창한 도시 모습을 상상했다. 폐허가 된 유적들은 사실 이전에 보던 그리스 유적지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널찍하게 펼쳐진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폐허는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콘코르디아 신전. 성당으로 쓰다가 다시 신전으로 복원했다. 당시 유적으론 드물게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리스가 멸망한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아그리젠토처럼 번성했던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 폐허로 돌아가고 잊혔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적이 잘 보존되는 데는 보탬이 된 듯하다. 원래 고대 유적이 사라지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데, 바로 파괴와 지진이다. 아그리젠토에서는 제우스 신전이 제일 규모가 컸는데 지진으로 무너진 후 주변 지역의 건축자재 조달장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이 도시의 주신전에는 남은 게 별로 없다. 반면 콘코르디아 신전은 지반이 부드러워 지진을 견뎌냈고, 6세기에는 교회로 전용되는 바람에 원래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았다. 아마 성당으로 전용되면서 살아남은 로마의 판테온과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10월이라곤 해도 지중해의 한낮 햇살은 한여름처럼 지글거렸다. 폐허에서 2천 년 전의 역사를 상상하는 일은 유익하고 흥미로웠지만, 현실적으로 역사광이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노역이다.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보니, 화로 속에 온몸을 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저 멀리 출구가 보였다. 출구 양쪽으로 진을 친 가게에 들러 시칠리아의 얼음 디저트인 그라니타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쳐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린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결국 포기하고 인근 가게의 도움으로 택시를 불렀다. 팔레르모로 돌아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오후 2시에 유적지 정문을 나섰는데, 한없는 기다림과 정지, 연착 끝에 팔레르모의 숙소로 돌아오니 거리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역시 여기는 시칠리아였다.

유적지 입구에서 보면 그리스 신전의 기둥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유적지의 뜨거운 태양 아래 여기저기 선인장 꽃이 신비롭게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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