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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08. 2023

시라쿠사로 떠나는 날

[시칠리아 여행 11]  팔레르모에서 시간 때우기

여행지에서 며칠 머물다 떠나는 날이 되면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제 좀 익숙해졌나 싶은데, 또다시 낯선 곳으로 옮겨야 해서 그럴 게다. 출발 시간이 남아 주변의 이미 가본 곳을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어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한 마르토라나 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사극영화 촬영 준비 중인지 주변은 장비로 소품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고, 스탭이 진입을 막는다. 영화든 텔레비전이든 무슨 촬영이라도 하게 되면 벼슬 행세 하는 짓은 여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의 건축물 구경으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이 광장에 자리 잡은 성당들은 서유럽 도시와 달리 매우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교차하는 시칠리아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광장 주변의 산 카탈도 성당이 그리스 건축 기둥에 아랍풍을 가미한 노르만 건축이라면, 마르토라나는 알바니아계의 동방 가톨릭교회 성당이다. 이들이 어쩌다가 멀리 시칠리아 섬까지 흘러왔는지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      

마르토나라와 산 카탈도 성당 등의 건축물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촬영 작업 때문에 마르토라나 출입이 봉쇄되었다.

내친김에 조금 더 걸어 제수 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 들렀을 때에는 결혼식 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곳이다. 성당 내부 모습이야 이제는 거기서 거기일 정도로 비슷하니 신혼부부의 인생 중대사에서 한 장면을 구경한 것이 아마 더 진귀한 경험일지 모르겠다. 외부는 평범했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니 18세기 바로크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건축물이었다. 이처럼 대단한 건축물이 일부 가이드북에는 언급도 안 되고 입장료도 없을 정도로 외면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는 바로크 건축이 너무 흔해 다른 곳이라면 명소가 될 법한 성당도 찬밥 신세가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멋진 건 멋진 거다.     

제수 성당에서 결혼식 장면을 보았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바로크 장식의 극치를 이룬다.

발라로 시장에서 마지막 점심을 들었다. 대낮의 발라로는 밤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상대적으로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비교적 한적해 보이고 동네 아재들이 여유롭게 앉아 있는 식당을 골랐다. 스파게티에 로컬 맥주를 시켜 팔레르모의 마지막 식사를 혼자 기념했다. 식탁 주변에는 고양이들이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며 어른거렸다.      

팔르르모 중앙역과 발라로 시장

팔레르모 중앙역 뒤편 버스 터미널에서 시라쿠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제는 낯익은 구시가지를 천천히 지나 외곽으로 갈수록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버스 창밖으로 다양한 풍광이 지나갔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유적과 빨래가 널린 서민주택이 스쳐갔고, 때로는 미국 서부의 유타처럼 황량한 땅도, 때로는 한국 충청도 어디쯤 같은 오밀조밀한 농촌 마을도 창밖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경부선으로 서울에서 부산 가는 정도의 거리를 달렸을까, 버스는 낯설고도 이제는 익숙한 어느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이제 시칠리아 섬 동쪽 해변의 시라쿠사에 도착한 것이다.

시라쿠사의 첫인상. 역사지구 오르티자 섬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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