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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09. 2023

아담하지만 화려한 바로크의 장관

[시칠리아 여행 12] 시라쿠사에서 노토 다녀오기

    

1693년 시칠리아 동부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거의 모든 도시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와 중세의 고풍스러운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가지는 폐허로 변했다. 시칠리아 인들은 이참에 18세기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도시를 재건했는데 노토는 그 여덟 군데 바로크 도시 중 하나였다. 여행 소개서에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 분위기의 고도시 어쩌고 하고 극찬을 하면서 적어놨길래, 과연 어쩐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그중에서 노토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시라쿠사에서 접근하기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시라쿠사 중앙역 귀퉁이 버스 터미널에서 노토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고 책에는 적혀 있었는데, 여기서부터 뭔가 아귀가 맞질 않았다. 출발 시간이 10시 45분이라더니 버스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결국 주변 사람에게 물어물어 출발 시간이 11시 반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도착해서도 버스 출발 시간과 관련해서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터미널 직원도 모른다고 했다. 주민들은 그냥 모두 알음알음 눈치껏 타고 다니는 듯했다.   

   

노토 구시가지로 들어가려면 포르타 레알레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도시 자체는 아름다웠다. 인구가 고작 2만 4천 명대에 불과하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에 충분히 올라갈 만하게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태를 잘 간직한 고도시였다. 시내를 관통하는 엠마누엘레 거리에 주요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대성당이나 주요 건물은 도시 규모와 격이 맞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특히 도시 전체가 파스텔 톤의 단일한 색으로 뒤덮인 장면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탄을 자아낼 만했다. 그렇지만 이미 비슷비슷한 도시를 너무 많이 본 데다가 버스 때문에 한바탕 신경을 썼더니 구경은 뒷전이고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노토에는 대성당 등 작은 도시 규모에 비해 거대한 건축이 즐비하다. 두체지오 궁전은 현재 시청으로 사용된다. 주요 건물은 정교한 바로크 장식으로 덮혀 있다.

소도시 치고는 나름대로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 뒷골목 주택가로 들어섰다. 시가지가 산비탈에 조성되어 있어, 경사지를 따라 난 골목과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고지대 계단 위에 서니 도로 사이 저 아래로 시가지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였다. 관광지인 엠마누엘레 거리에서 불과 몇 미터만 벗어나면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주택가는 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정물화처럼 시간이 정지된 마을 같이 느껴졌다. 


나의 첫 노토 방문은 그렇게 짧고 싱겁게 끝났다. 여행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흥은 의외로 참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에 의해 좌우된다. 물론 그런 일회성과 우연이 여행의 참맛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심 거리 엠마누엘레 가는 관광지 냄새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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