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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11. 2023

시라쿠사와 그리스 황금기

[시칠리아 여행 14] 시라쿠사 고고학 공원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치 않았다. 아주 슬슬 다닌 것 같은데도 긴 코로나 시기를 거치는 동안 몸이 식물성 정주형으로 바뀌어 강행군을 버텨내지 못하는가 보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칠리아까지 그 먼 길을 왔는데 넋을 놓은 채 호텔 방에만 있을 수도 없어 느지막하게나마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시라쿠사 시내의 그리스 로마 유적 답사가 목표다. 고고학 공원이라 이름 붙인 이곳에서는 일찍이 그리스가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시절의 건축을 볼 수 있다.  

    

유적은 시라쿠사 서북쪽 신시가지에 널찍한 터를 잡고 있었다. 지도나 안내 정보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입구 찾기부터 헷갈렸지만 난 어쨌든 눈치 문화권 출신 아닌가? 어째 어째 찾아서 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2천 년도 훨씬 더 지난 옛 도시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놀라웠다. 물론 그리스 시대 이후에도 로마나 중세 등을 거치면서 일부는 허물어지거나 개축되고 새로운 건축도 들어서면서 다양한 시대의 유적인 뒤섞인 종합적인 고고학의 보고가 됐다. 공원 안에는 그리스 시대의 극장과 채석장,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 중세의 무덤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시대인 BC 5세기에 절벽을 깎아 만든 이 극장은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원의 수많은 유적 중에서도 압권은 그리스 극장이었다. 그리스 시대인 BC5세기에 건설되었다가 로마 시대인 3세기에 개축을 거친 이 극장은 16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데, 공연과 집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에스킬루스의 일부 말년 작품은 여기서 첫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참석한 가운데 공연이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5월 초에서 7월 초까지는 여기서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극장 관객석 위로 올라가면 그리스 시절뿐 아니라 이후 다양한 시기에 조성한 무덤이나 도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공원 입구 근처에는 2-4세기 로마 시대에 건설한 원형경기장도 있다. 경기장의 일부는 허물어졌지만 관중석 정상에 서면 아직도 검투사들의 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 경기장은 허물어져 당시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특히 16세기 스페인이 시칠리아를 점령했을 당시 고고학에 무지한 군인들이 이곳을 허물어 오르티쟈 섬 주위에 성벽을 쌓은 건축자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을 견뎌온 인류 유산이 군인들의 무지로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는 사례는 원형경기장만이 아닐 것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이 그랬고, 터키 모드룸의 모솔루스 영묘도 비슷한 운명의 피해자가 됐다.      

이 원형경기장은 한때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대 규모의 건축이었으나 후대에 채석장으로 사용되면서 원래 모습을 많이 읽었다. 경기장과 하부 부분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공원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이 혼재하고 일부는 초기 건축을 나중에 개축하는 방식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해당 시대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리스’ 시대의 극장이라 불리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흔히 로마 시절의 부분과 뒤섞여 있다. 두 시대의 건축이 초보자 눈에는 비슷해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이전의 그리스 극장을 후대에 고쳐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면 양식의 차이는 있다. 극장을 지을 때도 그리스는 절벽을 깎거나 큰 바위를 사용해 관객석을 조성한 데 비해, 로마는 작은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그래서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로마 시대의 부위는 무너지고 그리스 부분만 남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극장을 벗어나 나무가 우거진 구역으로 발을 옮기면 흥미로운 암석 기대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그리스는 암석을 깎아서 건물을 짓는 석조 문화권이었기에 질 좋은 석재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이 암석 지대는 그리스인들이 건축 자재용 석재를 조달하는 채석장으로 알려져 있다. 암석 절벽에서 돌을 캐낸 곳에는 커다란 동굴이 생겼고, 이렇게 해서 지금같이 기이한 인공 동굴이 무수하게 만들어졌다. 동굴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가령 BC413년 시라쿠사와 아테네 간에 벌어진 전쟁 때에는 아테네 포로 7천 명을 이 동굴에 수감했다고 한다. 얼마 전 외신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그리스 시대로 추정되는 집단 매장지가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스 시절 석재 조달용 채석장으로 사용되면서 생긴 거대 동굴들은 후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왼쪽이 디오니소소의 귀라 불리는 동굴이다.

동굴 지대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곳은 디오니소스의 귀라 불리는 동굴이다. 높이가 23미터에 달하고 S자 모양으로 23 길이로 이어지는 이 동굴은 음향이 특이할 정도로 잘 전달되는 구조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낳았다. BC 4-5세기 시라쿠사의 독재자인 디오니소스 왕은 죄수들을 여기에 수감한 후 이들의 대화를 모두 도청하면서 감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17세기의 화가 카라바조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이 동굴에 디오니소스의 귀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라바조의 재치 덕분에 무미건조한 채석장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거리로 변신한 셈이다.     


10월인데도 시칠리아의 한낮은 뜨거운 햇살로 이글거렸다. 지도를 보면 아직 둘러보아야 할 유적은 지천으로 널렸지만, 이 정도로 답사를 끝내기로 했다. 아마 2천 년도 더 되는 옛날 시라쿠사의 그리스인들이 느끼던 열기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위안이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열기의 고통의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공원을 나와 가까운 식당에서 콜라를 곁들여 파스타로 늦은 점심을 하면서 열기를 식혔다. 그 흔한 콜라가 이렇게 시원한지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시라쿠사 히에로 왕의 제우스에게 제몰 봉헌용으로 쌓은 이 시전은 황소 450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기단은 폭이 22미터, 길이는 200미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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