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여행 6]
여행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로망과 같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여건이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모두 일상에서의 이탈로 여행을 꿈꾸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그동안 꿈꾸던 환상을 실현할 최고의 여행이 되길 바란다.
최고의 여행은 어떤 것일까? 한때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100군데 여행지’ 류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아마 여행의 기회가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최대한 가성비 높은 여행을 누릴 수 있도록 구상한 책일 거다. 이 책의 주장 대로라면 최고 여행지 중에서 알짜만 골라 단기간에 소원을 실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겪는 여행은 이와 딴판이다.
여행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부분 여행에 대한 환상과 거리가 멀다. 10시간이 넘는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뎌야 하고 그나마 연착과 취소로 공항에서 대기하는 불운도 따른다. 시행착오를 거쳐 유명 유적지에 도착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줄과 인파를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마침내 마주친 명소가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이집트 피라미드도, 파리 에펠탑도, 그랜드캐년도 솔직히 그저 그랬다. 그보다는 일생일대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간 곳, 이를테면 카이로 구도심의 콥트 교회 순례나 파리 뒷골목, 애리조나의 황량한 계곡을 달리면서 본 풍경이 훨씬 더 기억에 남았다. 최고의 여행은 여러 지표로 계산하는 FIFA 랭킹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우연한 경험에 가까웠다. 나에게 오래 기억되는 여행의 순간을 짚어보라고 한다면 대략 이런 것들을 꼽겠다.
아일랜드 모헤어 절벽의 바람소리
아일랜드는 여름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아일랜드인의 오랜 고단한 삶의 역사에 걸맞게 풍광도 날씨도 음산했다. 서쪽 땅끝 골웨이의 모헤어 절벽에 도달했을 때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 바람소리는 길거리 악사가 연주하는 하프 소리와 뒤섞여 묘한 화음을 이루었다. 태풍 때를 제외하면 그렇게 강한 바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은 모헤어 절벽의 바람소리와 하프의 선율을 떠올리면서 아일랜드인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와 당시 여행의 순간을 상상하곤 한다. 나의 브런치 필명도 이 기억에서 따왔다.
이파네마 해변의 모래
한때 남미 여행이 선풍적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편리한 단체여행을 마다하고 굳이 개별여행을 택해 남미 여러 지역을 차례로 탐방했다. 까다롭고 힘겨운 여행을 거의 마치고 리우 데 자네이로에 이를 무렵에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도할 수 있었다. 긴장을 늦추고 보니 지구 반대편 이 도시에서 이국적으로 다가온 것은 언덕 정상의 거대한 예수상이나 원숭이 무리, 식민지 시대의 건축, 유리와 강철로 된 초현대적인 대성당뿐만은 아니었다. 호텔 인근에는 보사노바 음악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이파네마 해변이 있었는데, 널찍하고 시원한 해변을 보면서 고향 부산의 바닷가를 떠올렸다. 해변의 모래는 투명하면서도 부드러워 마치 갈색 설탕을 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행이 감촉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담불라 민박집의 애프터눈 티
스리랑카 여행은 주로 불교 유적을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담불라는 굳이 따지자면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지는 곳이지만 이동 경로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체류하게 됐다. 예약해둔 민박집에 도착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다과 접시를 내놓으며 우리를 환대했다. 거실 벽난로 위는 성공한 자식들에게 대한 자부심을 뽐내는 듯 졸업장과 상패로 장식되어 있었다. 손님용 방은 두 개밖에 없었고 널찍한 정원이 인상적인 집이었는데, 여유가 있는 집안이라 아마 소일거리 삼아 숙소를 운영하는 듯했다. 이튿날은 유난히 더웠다. 일정을 일찌감치 마치고 돌아와 마당 의자에 앉아 쉬고 있자니 주인 아주머니가 영국식 홍차와 과자를 내왔다. 정원에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온갖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나무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주인아저씨가 즉석에서 야자 하나를 따서 내준다. 달착지근한 코코넛 주스가 목젖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감촉은 지금도 생생하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저녁 어스름
개인적으로 골치 아픈 일도 많고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약간은 도피성 일정으로 포르투갈 브라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러 가던 길이었다.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후 포르투에 내려 하루를 묵게 됐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포르투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오후 늦게 구도심을 여유롭게 산책했다. 아랍풍의 푸른색 타일을 입힌 고풍스러운 성당과 주택 건물이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받아 평화로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대가 높은 성당 계단 위에 내려다보니 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거리에는 저녁 어스름이 점차 짙어지면서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예스러운 거리 풍경 때문인지, 당시 나의 처지 때문인지, 아니면 순전히 우연인지 모르나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그 장면을 또렷하게 떠올리게 됐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참으로 시시한 경험들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같은 곳에서 비슷하게 느끼기 어려울지 모르고, 내가 다시 방문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게 원래 그렇다. 여행이든 뭐든 개인의 경험이란 게 순전히 주관적이고 우연이 개입하는 불확실한 사건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마주칠지 모를 최고의 순간을 위해 오늘도 짐을 꾸리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