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문가, 대기업 임원 C본부장에게 배운 리더십
선한 눈매와 인자한 인상, 친절한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짙은 감색의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 바틱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C본부님을 처음 대면하던 온라인 미팅에서 나는 이분은 '용기가 있으신 분이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바틱 때문이었다. 아무리 온라인상이라고는 하지만, 타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타인 앞에 선다는 것은 보통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것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미얀마에서 근무할 당시, 미얀마 전통 의상 론지 수벌을 현지 지인들로 선물 받았지만, 타인 앞에는커녕 집에서 혼자 론지를 입어보는 것도 민망하고 어색해 시도를 포기하기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으로 C본부장님은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로 갑자기 발령을 받으셨고, C본부장님이 양곤에 처음 입국하시는 날, 나는 공항에서 C본부장님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작은 얼굴 때문에 작고 왜소하게 봤던 온라인상에서는 다르게 190cm는 돼 보이는 장신의 키와 긴 팔다리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본부장님은 역시나 환하게 첫인사를 건네셨다.
1년 반의 동고동락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회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같이 어려움을 마주하고 고민하고 또 해결했다. 코로나와 군부 쿠데타의 상처에서 아직 허우적 대는 미얀마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 여전히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신의 노여움 때문인지 절망적인 자연재해들은 미얀마 국민들이 겨우 숨만 쉬도록 허락했다. 말 그대로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고, 눈만 뜨면 사건사고가 발생해 우리는 일 년을 한 달처럼 압축적으로 바쁘게 살았다. 그런 전쟁터에서 C본부장님은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바로 극단적인 관대함이었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관대함을 정의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세상의 선입견과 평가를 제로 베이스로 만든 상태에서, 그 상대가 가지고 있는 단 한 톨의 장점까지 찾아내서 인정해 주고 칭찬하려는 극한의 노력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정의로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도 할 수 있다. C본부장님이 가지고 있는 관대함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배경, 소위 사회적 스펙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위대함이 더 커진다.
본부장님은 S대 88학번이다. 그리고 공부가 모자랐는지 미국 MAB도 마쳤다. 그리고 외국계 은행을 첫 직장을 시작으로 평생 금융업에 종사했다. 현재 대기업 임원이 되기까지, 인사, 감사, 재무, 리스크, 경영관리 그리고 유창한 영어실력 등 업무에 있어서 제너럴리스트이자 다방면에서의 스페셜리스트다. 또한 회사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관련 굵직한 의사결정과 프로젝트를 직접 하였고,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해외 주재원 경험으로 현장 전문가라는 타이틀도 추가했다.
비단 소프트웨어뿐이 아니라 하드웨어도 요즘말로 사기캐이다. 186cm에 긴 리치, 군살하나 없는 75kg의 몸매, 매일의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완성된 건강한 에너지 그리고 좀처럼 아프지 않은 강인한 체력까지, 내가 보는 시선에 서는 요즘 트렌드 육각형 인재를 넘어 팔각형 인재이다.
극단적인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미얀마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C본부장님의 관대함은 그 빛이 더 밝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스펙의 대기업 임원의 이미지는, 아주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좀처럼 드리 내지 않으시고 가장 낮은 자세에서 직원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에 익숙하신 분이셨다.
그렇다면 이런 관대함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C본부장의 박식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업무적으로나 업무외적으로나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서 오는 여유가 있기에 타인에게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박식한 것은 단시간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경우에도 본부장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닮고 싶어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박식하다는 결과보다는 C본부장의 어떤 습관 때문에 박식하게 될 수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 본 결과, 그건 바로 호기심이다.
C본부장은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직접 경험해 보고 이를 체득화한다. 일례로 미얀마의 어떤 삭당도-가끔씩은 너무 비위생적이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도- 거침없이 들어가 경험하고 만족스러우면 다시 가고 그렇지 않다면 안 가면 그만이다. 나는 그것을 용기이고 열려있는 태도라고 해석한다. 첫 온라인 미팅에서 C본부장에게서 받은 용기 있는 그의 첫인상을 내가 제대로 캐치한 셈이다.
나는 근 20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직장 상사와 의사 결정자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C본부장처럼 한결같이 관대함을 유지하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이가 들고 시들어가면서 우리가 태초에 가지고 태어난 호기심의 본성을 너무 당연히 잊고 살아서 그런거 같다.
C본부장을 만나고 나는 선입견과 편견 없이 모든 것들을 부딪혀 보려고 노력한다. 새로 발령 난 곳에서 점심마다 선택해야 하는 식당에 들어갈 때도, 이미 그곳에 익숙한 직원들의 안전한 충고 대신에 나는 경험해보고 싶은 식당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간다. 맛없으면 다시 안 오면 그만이다. 회사 인근에 위치한, 네이버 지도에 등록된 수백 개의 식당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갈 곳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하루에 한 곳 씩 가더라도, 2년은 가뿐히 날마다 다른 식당을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식당이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한다.
피곤하고 바쁜 일상에 호기심은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진짜 호기심이 관대함이라는 리더십 덕목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한번 실행해 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버스를 타러 가거나 혹은 걸어가거나 할 때 이번에는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길로 한번 가보자. 나는 감히 그 작은 변화가 호기심이고, 모험이고, 도전이며, 나를 좋은 리더로 만드는 관대함을 배우는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