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해외법인 P부법인장의 관찰의 리더십
"안녕하세요, L부장님을 통해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P부법인장이라고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느닷없이 P부법장님을 만났고, 그는 딱벌어진 어깨와 큰키 그리고 낮은 톤의 중저음 보이스로 단단하고 우렁하게 인사를 건넸다. 문자 그대로 강렬한 첫 대면이었다. 그의 태도에서 나는 단번에 '아 이분은 자존감이 굉장히 높으신 분이구나' 알아차렸고, 한편으로는 불편할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는 많은 자존감 높으신 분들은 대체로 타인의 감정과 상황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만 직진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만남이 지나고 나서 이번에는 느닷없지 않게 계획된 만남을 했고, 우리는 서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나는 내성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오지랍이 넖은 편은 아니었기에 어색한 상황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며, 아주 친하는 않은 사람들과의 첫 만남인 경우 대체로 짧게 끝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이갸기 전개 될수록 무엇에 홀린듯이 나는 P부법인장과의 시간을 더 붙잡고 싶었고, 내가 잘하는것 중 하나인 좋은 술을 주문해서 계획된 시간을 의도적으로 지연했다.
P부법인장은 대화에 있어서 포지션이 공격수는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때 자존감 높은 태도를 미뤄 짐작했을때, 나는 그가 당연히 공격수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몸을 상대방쪽으로 굽히며 경청하는 스타이일었다. 술한잔 두잔이 쌓이고, 한병 두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대화 주제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그러다 P부법인장은 또 느닷없이 속 깊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누가봐도 부유한 환경에서 고민없이 승승장구 하며 단 한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을것 같던 그는, 예상과는 다르게 자수성가한 과거를 덤덤하게 이야기 했다.
자수성가한 이야기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어쩌면 조금은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본인의 이야기들을 너무 덤덤하고 단단하게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경쟁하듯 본인의 화려한 순간, 단 1초의 순간이라도 하이라이트하여 과시하는게 일반적인데, 어째서 P부법인장은 묻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들을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했는지를 나는 의례 그랬듯 또 의심했었다.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연약함은 유독 들키고 싶지 않은 나였기에, P부법인장의 그런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P부법인장의 리드에 따라 나도 나의 속살같은 연약한 얘기들을 상담하듯 풀어냈고, 그 시간을 계기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내 이미지속의 P부법인장은 항상 생각하는 상태였다. 누군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누군가 예상치 못한 실수를 그의 앞에서 했을때, 또 누군가 그에게 판단을 강요했을때, 그는 항상 반응하지 않고 생각하며 대응했다. 그리고 나서 생각이 정리되면, 특유의 사색하는 표정으로 첫 마디를 뗏고, 일목요연하게 사안들을 정리해 나갔다. 나중에 아주 친해지고 나서야 그는 머리속에서 먼저 이미지화를 통한 시뮬레이션을 한 후에 행동한 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사실 그의 숙고는 고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반응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타인에게는 좀 미안할수 있어도 내 정신건강에는 좋지가 않다. 인간인 이상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는 때로는 화도 나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또 때로는 타인을 아프게도 한다. 약간의 뻔뻔함을 방패삼아 우리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유지해야만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그는 예외없이 모두 대응하고 숙고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부법인장님은 콘센트를 수십개 달고 사시는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그는 본인도 안다고 했다.
이렇듯 P부법인장님은 자신의 에너지, 혹은 생명력을 태워가며 타인과 관계하고, 직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고, 조직에 최상의 성과를 기여하려고 매 순간 애쓴다. 유독 그가 힘들어 보이는 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어보면, 그는 여지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것 같다며 아파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직원들에게 불편한 소리라도 하게 되면 그는 마치 피를 철철 흘리는 것 같이 속으로 몰래 아파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부법인장님 직원들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고는 밤새 아파하는 사람이 왜 매번 그렇게 무모하게 또 반복하세요? 그냥 모른척하시지" 물으면 그는 "직원들이 자립해서 근사한 리더들이 되는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데 어떻게 모른척해요. 내가 좀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죠"하고 답했다.
혹자들은 그가 예민하고, 분석적이고, 또 다가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치만 단언컨데 나는 그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리더라는것을 잘 알고 있다. 그에게는 관계를 맺는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있다. 내가 애민정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권위적이라는 뜻이 아니며, 그릇의 크기를 얘기하는 것이다. 본인의 생명력을 희생해서 타인을 넉넉히 감싸줄수 있는것은 포용력이고 사랑이고, 리더십에 있어서는 애민정신이다. 나는 20여년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애민정신을 가진 리더를 본적이 없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갖추고 싶은 덕목이 바로 이 애민정신이었기에 단박에 그의 애민정신을 알아볼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 애민정신을 P부법인장은 어떻게 갖게 된것일까? 나의 분석에 따르면, 그건 바로 관찰의 힘이다. 내가보는 P부법인장은 사실 예술가적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외부의 자극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차릴수 있는 능력, 그건 예술가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언제나 예민하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더 나아가 공감한다. 상대의 기쁨, 슬픔, 화남, 걱정을 그는 자신의 일처럼 내면화한다.
관찰의 힘을 통해 다른이에 대한 감 공감능력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애민정신을 갖춘 리더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우리의 시간을 0.8배 속도로 조금 늦춰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자동차를 타고 가던 때 보이지 않는것들이 자전거를 타고 갈때 보이고, 또 자전거를 타고 갈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뛰어갈때 보이고, 또 뛰어 갈때 보이지 않는것들은 걸어갈때 보이기도 한다. 속도를 늦추면 우리는 손해가 날까 두려와 오히려 더 속도를 높이곤 하지만 정작 느릴때 얻는 이득이 클때도 분명있다.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삶에 여유가 끼여드 틈을 준다는 것이고 여유는 또 주변을 관찰하게 만드는 기회를 준다. 관찰의 힘이 좀더 우리에게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들이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이 궁금해지고 그리고는 이해하고 공감의 영역으로 넘어 갈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이렇게 이어지면 우리 사회는 전보다 조금은 따뜻해 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