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은 나무의 뿌리를 깊게 자라게 한다
제법 겨울스러운 묵직한 추위가 찾아왔다. 몇 해를 겨울 없이 지낸 터라 겨울 추위가 낯설고도 반갑다. 오랫동안 없던 겨울이기에 우리 가족은 겨울맞이에 더 분주했다. 먼저 덩치가 커버린 아이들의 겨울옷과 머플러, 장갑을 새로 샀고, 또 두터운 이불도 준비했고, 기분을 더 내 아기자기한 핫팩까지 대량으로 장만했다. 어제는 진짜 강추위를 대비해, 아내가 아이들 내복 구입을 계획 중인 것 같아, 은근히 내 것도 부탁해볼 셈이다.
추운 날씨는 어김없이 나를 과거의 기억 장소로 데려간다. 보다 정확히는 몸의 기억이 그날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꺼내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장소는 바로 내가 군 생활을 했던 2001년 12월 겨울, 연천 대광리 고대산이다. 나는 그날 추위의 공포와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 그리고 태양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완전하게 느꼈다.
그날은 군 생활하면서 겪은 많은 훈련 중 하나의 훈련 날이었고, 우리 분대는 고대산의 깊숙한 한 지점에서 초저녁부터 진을 치고 밤 10시까지 매복하다 본진에 합류하는 임무를 맡았다. 4~5시간의 짧은 매복이라 가볍게 여겼는데, 밤 10시가 지나 11시, 그리고 자정이 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우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고립되어 밤을 새웠다.
소대에서 매복 지점까지 데리러 오기로 사전에 약속했고 사전 모의 훈련도 했기에, 플랜 B 없이 안일하게 추위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고, 안일함에 걸맞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전방의 겨울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극한의 방한을 하고도 3시간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존 지혜를, 야간 경계근무를 통해 누구보다 매섭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합류하겠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을 만큼 그 당시 나는 현명하지 못했다.
일말의 거짓 없이 정말 추워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그날 생각했다.새벽이 되자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그나마 얇은 옷마저 흥건히 젖었고, 공포는 끔찍했으며, 너무도 간절히 따뜻한 집에 가고 싶었다. 해가 뜨자 그제야 사람들이 우리를 찾으러 왔고, 훈련 전개가 갑자기 바뀌었다고 그들은 둘러댔지만, 아마 그들은 우리 분대를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와중에 태양은 난로를 피운 것처럼 뜨거운 온기로 우리를 데워주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솟아오른 거대한 크기의 불타는 태양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지만, 그 외에 그날의 기억은 아무리 끄집어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모든 하찮은 것들을 과감히 지워버리는 자연의 위대한 지혜가 아닌가 싶다.
그날 이후 적어도 나는 추위라는 위험에 대비하는 데 유난하다. 아내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추위를 많이 탄다고 가볍게 놀리곤 하지만, 사실 나는 과거의 경험으로 나만의 지혜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며, 이는 추위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겪을 모든 위험과 도전에 대비해서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봄과 열정의 여름, 풍요의 가을만을 살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절망의 겨울을 살고 있다면, 겨울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꼭 생각했으면 한다. 혹독한 겨울은 나무의 뿌리를 깊게 자라게 하는 시작의 계절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