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무사함에 감사하자
아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월요일,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누구도 아내가 일주일 동안, 그것도 상급 병원까지 옮겨가며 입원 치료를 받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또한 만약 미얀마에서 이런 무서운 상황을 맞았다면, 우리 가족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를 가정해보니 막다른 절벽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미얀마에서 밀어냈던 보이지 않는 힘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 모질게 나를 이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23년 전 이맘때, 평소보다 독한 감기 기운으로 동네 병원 입원을 위해 집을 나섰던 어머니는 15일 만에 생명을 잃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가 약간의 치료 후 평소처럼 집에 곧 돌아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나는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아버지의 성화에 겨우 찾았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탁월한 능력이 있던 어머니는, 병실에 있는 생면부지 환자들과 하루 만에 친해져, 내가 면회를 가니 모든 아주머니들이 이 아들이 그 아들이냐며 나를 닳도록 만지게 하셨다. 어머니는 웃는 모습이셨고, 어떠시냐는 애정 없는 뻣뻣한 큰아들의 물음에, 머리가 이따금 아픈 것 말고는 괜찮다 하시며 금방 집으로 오신다고 했다. 그게 어머니와 정상적으로 한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셨고, 2023년 1월 1일 새벽에 구급차로 서울의 큰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뒤에 혼수 상태가 되셨다. 의식을 잃기 바로 전, 검사를 위해 뇌척수액을 뽑고는 반드시 안정이 필요하다는 병원의 경고에, 나와 내 동생은 이를 악물고 6시간 동안 어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기능을 잃어가는 뇌의 반응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의 어머니 상태에 절망하며, 탈진할 정도로 더욱 어머니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붙잡고 있었고, 어머니는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며 제발 풀어달라고 절규하셨다. 그러고는 어머니는 다시 깨어나지 않으셨다.
아주 오랫동안 그 순간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마지막 유언 같은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죽을 듯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이 얘기를 밖으로 꺼내는데 23년이 걸렸나 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병원에 갔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 경험은 그 이후로 나에게는 극심한 고통과 트라우마가 되었고, 언어로는 인간의 감정을 규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럼에도 이 트라우마를 지금 꺼내 마주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에 대한 자취도, 기억도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서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랑 같이 한 세월만큼 꼭 같은 시간을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작고 보잘것없이 연약하던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그래도 꽤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시간이 빠르다.
아내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으나 무사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무사함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해주는 모든 힘이, 언어로 표현 못 할 만큼 무한하게 감사하다
지금 여기서 사랑하는 가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과, 오늘 하루의 안녕을 물어봐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편안한 잠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매일의 무사함이 그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작년 이맘때 불의의 사고로 아직도 의식 없이 요양원에 누워계시는 친구 어머니와 사랑하는 친구, 그리고 친구 가족의 지극히 평범하고 무사한 매일이, 다시 회복하길 나의 모든 정성을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