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찰 L경감, 감사에서 비롯된 책임감의 리더십
한때는 프로야구에 심취했던 때가 있다. 타석에서의 삼세번의 기회, 9회를 서로 주고받는 평등한 공수교대, 그리고 이기 위한 숨 막히는 전략들,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팀당 144경기의 정규시즌과 그리고 결승 플레이오프전이 왠지 우리 직장인들의 삶과 닮은 것 같아 애잔하면서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연히 직관을 가게 된 잠실구장 한국시리즈 삼성라이온즈 경기에서, 마지막에 끝판대장 오승환이 그라운드에 오르는 장엄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해철의 라젠카 save us를 등장음악으로 투수석을 밟았을 때, 삼성라이온즈의 팬들은 물론 상대편마저도 우리의 끝판대장이 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쳤다. 말 그대로 끝에서 다 이기는 대장이기에는 나는 이 단어를 꽤 애착한다.
내가 가진 한 가지 버릇 중의 하나가 주변의 사람들을 각자의 전문영역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그들 중 나만의 기준에서 끝판대장 칭호를 수여하는 것이다. 투자의 끝판대장, 달리기의 끝판대장, 지식의 끝판대장 등 다양한 끝판 대장들이 나의 세상에서는 존재하지만 아직 채워지지 않은 영역도 여전히 많다. 이런 맥락에서 책임감 영역에 있어 끝판대장은 단연코 대한민국 경찰 L경감이다. 국민에 대한 책임감뿐 아니라 가정에 대한 책임감 또한 같은 가장으로서 존경할 점이 많다. 특히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내가 다시 태어나도 그와 같은 마음을 지닐 자신은 없다.
그는 경찰이 된 사연은 아버지의 바람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장사하시던 부모님을 지금도 존경한다고 하고 시간만 나면 부모님을 찾아뵙는다고 그는 힘주어 말하곤 한다. 그의 아버지가 왜 L경감이 경찰이 되기를 바랐는지에 대해서 얘기한 적은 없으나, 그가 이따금 묘사한 그의 아버지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 보면, 그의 아버지는 본인 자체가 올바른 성품을 가지신 분일 꺼라 짐작되고, 맑고 순수한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 L경감은 그의 관한 얘기를 매우 아낀다. 처음에 그를 잘 모를 때는 좀 더 깊이 있는 얘기에 들어설만하면 한발 빼며 건조해지는 그가 서운하게 생각될 때도 있었는데 관계가 지속되고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쾌활하며 타인과의 적극적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그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공무원의 단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공무원의 품격을 스스로 유지하는 그를 아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당신은 천상 공무원이라고 칭찬해 마지않는다.
그와 가까워진 어느 시점에서 나는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곤 했다. "경감님은 왜 항상 단정하세요? 공무원도 사람이고, 내가 아는 공무원들도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이 느슨해지던데 경감님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네요. 살면서 그렇게 느슨해 진적 있으셨나요?" L경감은 긴 고민 없이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저 자기는 경찰로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그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을 넘어서는 본연의 순수함이 있다. 우리 국민이 사선에서 긴박한 순간에 있을 때 그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고, 주위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으며, 사람의 안전은 진영과 논리의 차원이 아닌 기본 영역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고, 이를 실천하는 순수한 행동력이 있다. 한 번은 중범죄자에게 마저도 마음을 쓰며 고단해하는 그에게 진심이 담긴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아니 경감님 그 중범죄자 자식은 진짜 나쁜 놈인데 뭘 그렇게 까지 신경 써요. 제가 보기에는 세금으로 감옥에서 지내게 하는 것도 화가 나서 속에서 천불이 나 죽겠는데요". L경감은 특유의 순박한 웃음으로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주어진 일을 하는 거예요. 제 손을 떠날 때까지 그도 그냥 우리나라 국민이에요" 짧게 답변을 했다.
그는 정말 그냥 묵묵히 했다. 그를 설명하면서 '그저, 그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부모님에게 배웠던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 교과에서 배운 책임감을 이행하는 방법, 그리고 살면서 배운 타인을 이롭게 하는 방법들을 손수 실행하는 것뿐이라며, 특별히 대단한 것도, 어려운 일도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사명들을 덤덤히, 부모님이 주신 특유의 근면함으로 이행하는 것뿐이라고 늘 같은 톤으로 이야기한다.
같은 직장 동료와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직업적으로 챙겨야 하는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까지 챙기고 구원하는 그의 리더십의 근원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그의 '감사하기'이다. 그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감사한다'는 말을 잘 사용한다. 어떤 사안을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 순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사한다고 조아려 말을 하고 상대로 하여금 조금도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진정성 있게 잘 쓴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나서는 아버지에 전화하여,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보내주신 음식을 감사히 먹으며 감사한 시간을 보내 감사했다고 말하는 그가 참 맑아 보였다.
가족에 대한 보살핌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 더 나아가서 국민에 대한 공무원으로서의 봉사하는 마음의 괘가 결코 다르지 않다고 한결같이 말하는 그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처음부터 와닿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혹은 영화, 드라마 콘텐츠의 단골 소재를 통해 공무원과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는 않다. 나 역시 다르지 않게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를 알게 되고 경찰관의 부정적 이미지를 모두 파쇄해 버렸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졌던 어리석은 편견들임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근거도 없이 잘 믿어도 왔었다.
그와 만나면서 나도 일상에서 '감사하기'를 많이 실천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억지스러운 감사한 마음들이 한번 두번 실천의 경험이 쌓일수록 진짜 감사들로 변했고, 지금은 어렵지 않게 감사한 것들과 감사한 일들을 발견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감사할 소재들이 많아지다 보니 나는 이를 매일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로 인해 삶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워짐을 느낀다.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조금은 그가 세상을 보는 감사하는 방식을 나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감사하는 마음 하나로 나는 타인에게 꽤 괜찮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 기분마저 든다.
오늘은 좀 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내가 아는 L경감과 같이 책임감 있고, 국민을 가족같이 아끼고, 매사에 감사함을 많이 느끼는 경찰과 공무원이 많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건강하고 따뜻할까를 상상해 본다.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그런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우리가 관심이 적어서 못 보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L경감이 늘 겸손하게 "저희 경찰조직 11만 명 중에는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어요" 하는 말을 신뢰해 본다.
"이사님 가족들이 편안히 주무실 수 있도록 제가 밤에 잘 지키고 있을게 잘 쉬세요.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그의 카톡 메시지가 오늘은 유독 듬직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