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의류업체 설립자 L회장님
금융기관에서 기초적인 업무를 5년간 하며 초보 딱지를 막 떼고 이제 본격적으로 외부의 고객과 회사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할 무렵, 내가 우리 조직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당시 팀장님의 요청 때문에 L회장님을 처음 만났다. "Y대리,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L사장님 일을 도와드릴 수가 없는데 Y대리가 연락해서 처리 좀 해드려"라고 말하며 팀장님은 밖으로 나가셨고, 나는 얼떨결에 L사장님께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 L사장님과 연결되었고, 그 이후로 종종 일이 있을 때면 그와 통화로 도움을 드리곤 했다. 항상 차분하고 간결한 요청으로 L사장님과 길게 통화를 할 일이 많지 않았고, 요청업무가 개인 및 가족 관련 된 간단한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통화가 쌓여 갈수록 나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는지 L사장님은 팀장님 대신 나를 찾는 일이 이후에 점점 많아졌고, 초보 전문가들이 많이 그러하듯이 사실 그때의 나도 수익성 높지 않은 단순업무가 귀찮게 느껴져 팀장님께 볼멘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그런데 L사장님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점잖고 좋으신 분 같기는 한데, 엄격히 보면 저랑 관련이 없는 업무로 자주 단순 업무만 요청하시니 제가 계속 서포트하는 게 맞나 싶어요. 저도 요즘 할 일이 많고 바빠서 중요한 일 할 시간도 많지 않아서 솔직히 가끔은 짜증스러울 때도 있어요". 업계 베테랑이자 강남에서 거액 자산가들의 관리 매니징을 하셨던 팀장님은 온화한 미소로, "Y대리, L사장님 좋은 분이시니까 잘해드려. 다른 사람 같으면 내가 시키지도 않았어" 애매한 소리를 하시고는 자리를 뜨셨다. 당시 많은 업무량으로 약간의 볼멘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팀장님을 존경하고 따랐고 다른 고객층을 만난다는 사실을 내심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간은 지루한 단순업무들이 차곡히 쌓여가며 나는 L사장님과 개인전화로 통화를 할 정도로 친밀감이 쌓여 갈 무렵, L사장님은 대면 미팅을 요청하셨다.
"Y대리님, 제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개인적으로 회사관련해서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제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회사가 영세해서 제가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 미안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정말 그날 원거리에 있는 L사장님을 방문까지 하며 업무를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반강제적으로 어찌하여 L사장님을 방문하게 된 그날이, 내가 지금 고객과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겸손하고 배우는 자세를 진심으로 유지하는 중요한 역사적 포인트가 되었다.
나의 잘못된 선입견과 무지, 경솔함에 대한 심한 반성을 했기에, 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생생하게 한다. L사장님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니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의류 클러스트 단지 한가운데였고, 큰 부지와 여러 동의 건물이 보이는 입구에는 너무나 유명한 의류 브랜드들의 간판이 보였다. 그때까지도 나의 무의식은 내가 개인폰으로 편하게 통화하던 L사장님이(지금은 회장님으로 불리시는) 이 큰 회사의 대표라는 생각은 아예 없어, 본사 건물에서 가장 먼 곳부터 혹시 L사장님이 계신가 훑기 시작했다. 물류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수개를 구석구석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L사장님은커녕 수만 피스의 옷 외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30여분이 흘렀을 무렵 옷가지를 정리하는 사람을 간신히 발견하여 물었고,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아, 대표님 찾으세요? 본사 건물에 계실 거예요. 그리로 가보세요". 우여곡절 끝에 L사장님을 만났고, L사장님의 대표이사 실을 가기까지, 나는 족히 300여 명의 회사 직원들을 만났던 것 같다.
내용은 그랬다. L회장님은 유명 의류 제조업체 대표이사로 예전부터 우리 팀장님의 주요 고객이셨고, 회사와 관련되지 않은 개인 업무들은 대부분 혼자 처리하셨다고 했다. 내가 알던 많은 큰 회사의 대표들은 나와 같은 주니어들이 업무적으로 직접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개인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난 정말 L회장님이 동네 구멍가게 사장으로 생각했고, 왜 팀장님이 나의 볼멘소리에 뜻 모를 웃음을 지셨는지 그제야 알았다. L회장님이 회사의 대표이사였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L회장님은 그간 자신의 개인 업무를 잘 처리하는 나의 업무 태도를 좋게 보셨다고 하고, 이번에 새로 설립한 자회사 관련 업무를 도맡아 처리해 달라고 하셨으며, 이 후로 일은 잘 진행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업무적으로도 태도적으로도 굉장히 미숙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큰 기업을 운영하시는 L회장님은 여러 금융기관 중에서 세련되고 박식한 전문가들을 선별해 많이 만나셨을 테고 내가 여러 면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모르실 리가 없었을 것이다. 팀장님의 배후에서 지원 사격도 있었을 테고, 자식나이뻘의 내가 버벅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에게 기회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때 나는 사람들에게만은 진심이었다. 풋내기로서 전문가처럼 잘하는 방법은 비록 잘 몰랐었을지언정,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도움이 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유지했다. 아마 큰 그릇의 L회장님은 그런 나의 열정을 쓰다듬어 주신 게 아닐까 지금에 와서 생각 든다.
본론으로 돌아와 L회장님을 방문했던 그날, 그리고 이후에 L회장님을 만나고 얘기하면서 나는 L회장님의 리더십을 어깨너머로 배울 기회가 갖게 되었다. 앞에 일화에서 묘사한 L회장님의 개인적인 겸손과 초심은 회사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작은 의류회사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현재의 큰 기업으로 성장시킨 후에도 L회장님은 초심을 경영의 가장 큰 가치로 삼는다고 하시며, 그런 영향 때문인지 큰 회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전기절약과 종이절약 캠페인 문구는 벽마다 붙어 있었고, 직원들의 책상에는 필요 이상의 물건들은 없었다. 대표이사 방도 예외가 없었다. TV에서 보던 큰 회사들 대표이사 방의 웅장함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창고로 생각될 만큼 샘플과 신제품, 타사 제품들이 빼곡히 들어와 자리 잡고 있었고, 직원들도 수시로 대표이사 방을 들락거리며 치열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가라며 데려간 구내식당에 회장님이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놀라는 이가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L회장님은 특별한 외부일정이 없는 경우에는 항상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시고 직원들이 먹는 밥을 손수 챙기셨다고 한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L회장님의 회사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L회장님을 매체에서 보곤 한다. 또한 백화점이나 로드샵에서 L회장님의 브랜드를 볼 때면 으쓱해하며 나의 아이들에게 에전에 아빠가 업무적으로 잘 알던 분이 하시는 회사제품이라고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아마 L회장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나, 나는 아직도 그분에게 배웠던 초심과 겸손을 잊지 않고 있고, 이런 분이 만드는 옷은 좋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에 나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L회장님의 브랜드를 홍보하곤 한다.
내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는 수만 명의 많은 고객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하면서 축적한 데이터 덕분에 어느 정도 관상을 볼 줄 안다"고 말하곤 한다. 또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적으로 고객 회사를 방문해서 처음 만나는 그 회사 직원 3명만 만나보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도 자신 있게 말한다. 그건 대부분의 대표이사는 자기와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선호하며 어느 순간 그런 코드가 많은 사람들로 회사가 꽈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마다 각자의 고유한 특성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좀 더 고상하게 기업문화라고 일컬으며, 모든 리더십 관련된 강의나 책에서 기업문화를 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기업문화를 보는 견해, 그리고 내가 몸담던 회사에서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 위해 노력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L회장님과 L회장님의 회사를 벤치마킹하였고, 이제는 좋은 회사를 알아볼 수 있는 꽤 유용한 식견도 생겼다. 내 기억에 내가 업무적으로 만난 그 회사 직원 모두는 L회장님을 그대로 카피한 것처럼, 겸손하고 친절하고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차분함을 잃지 않으시던 L회장님도 의류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 같은 초보 전문가 앞에서도 꽤 인사이트 있는 심도 있는 얘기들을 목청 높여 얘기하시곤 했는데, 아직도 자신은 회사를 한국의 Zara 같은 회사로 반드시 만들 것이라는 이 말이 지금도 감동적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