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뼈와 살을 내어주는 살신성인

모두가 사랑한 L여사의 리더십

by 미스터Bit

L여사는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신 나의 어머니이다.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내가 만약 책을 쓰게 된다고 하면 나의 위대한 스승이자 누구보다 강한 리더인 어머니의 얘기를 꼭 쓰고 싶었다. L여사는 1949년에 한국전쟁 직전에 태어나 그 시절 모두가 그랬듯이 많은 형제들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고등교육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다 아버지를 만나 고향에 정착해 평범한 주부로 두 아들을 키웠다. L여사는 내가 만난 누구보다 강한 리더의 기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공무원 아버지의 영향으로 펼쳐볼 기회조차 없었다.


내가 2년 2개월의 군생활을 막 마감한 2002년 12월 연말, L여사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온천여행을 다녀오신 뒤, 감기기운을 느껴 동네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며칠째 지속된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상급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2003년 1월 1일 혼수상태가 되시고 영영 깨어나지 않으신 채, 15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평소에도 잔병치레가 많아 단순한 감기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사이, 바이러스성 급성 뇌수막염이라는 생소한 병명은 L여사를 빠르게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을 포함해 L여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순식간에 L여사를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야만 했고, 그때 나와 내 동생은 고작 22살과 20살이었다. 하루아침에 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내 기억 속의 L여사는 밤하늘 보름달 같은 분이었다. 사방이 시커먼 밤이 되면 나와 가족들이 긿을 잃을까 염려해 묵묵히 밝기를 내주어 길을 걸어가게 해 주었고, 태양이 뜨는 아침이면 희미해 형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떠서 또 다가올 가족의 캄캄한 밤을 준비하셨다.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가족의 모든 대소사를 직접 챙기셨고, 사촌형의 졸업, 조카의 돌잔치, 옆 이웃의 환갑 잔 지 등 그 시절이 담긴 사진 속에 예외 없이 L여사는 한 귀퉁이를 환한 웃음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전후 세대로 태어나 국가의 가난과 고단함을 함께 짊어지고 평생 삶을 산 L여사는, 전쟁보다 더 전쟁 같은 가난함 때문에 넉넉한 배움을 채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입버릇처럼 우리 두 형제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대학에도 다니고, 외국도 나가고, 하고 싶은 공부 다하고 살라고 강조하셨다. 두 아들이 빨간 색연필로 표기된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올 때면, 비싼 시외전화비를 기꺼이 감수한 채 타지에 있는 친지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다. L여사에게 배움은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에 전쟁통에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보다 더 애틋한 것이었으나, 나와 동생은 배움이, 대학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에 영향을 받아, 나는 지금도 배움 그 자체를 내 인생의 큰 한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L여사의 장례를 치른 이후에도 족히 몇 주 동안은 낯선 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돈봉투를 주고 갔는데 가면서 예전에 어려웠을 때 L여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돈인데 그간 갚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빠듯한 공무원 외벌이 살림에 무슨 여유가 있어 돈을 빌려주었을까 의문이 들었고, 심지어 어떤 이는 L여사가 다른 이에게 돈을 빌려와서는 땅을 사라고 해서 땅을 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그녀의 재정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직접 물어봤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그녀는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재무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제는 기억이 뜨문뜨문한 L여사는 뛰어난 리더로서 여전히 나의 롤모델이고, 그녀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살신성인의 리더십이다. 어느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신의 몫을 아까워서 안줄까만은, L여사는 유난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나와 나의 가족이 관련된 모든 일에 어머니가 항상 있는 것이 어린 마음에 싫은 적도 있었으나 부모가 된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시대적 차이나 상황적 다름을 고려하더라도 어지간한 크기의 사랑과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살과 뼈를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L여사처럼 매 순간 그들을 위해 살 자신은 솔직히 없다.


L여사를 필요로 하는 순간, 어김없이 L여사는 내 지근거리 손 닿을 거리에 있었고,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알아챘고, 모자람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그녀는 그녀의 육체와 영혼으로 나의 모자람을 채워주었다


시대와 장소, 문화를 막론하고 위대한 리더들에게는 대부분 어머니라는 이름의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 생애 전 기간을 거쳐 우리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어머니의 사랑과 현신, 섬김을 늘 가까이서 경험하고 그 가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서 그친다. 사실 어머니의 위대한 가르침은 리더십의 정수이자 진리이고, 무엇보다 먼저 습득하고 익혀, 우리 자신 고유의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기본 재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나의 어머니 L여사의 리더십을 설명하였으나, 이는 보편적인 리더십의 종류는 아니며, 리더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본인 어머니의 리더십 레시피를 기본으로 하여 각자의 특성에 맞게 잘 발전시켜 활용해 보라는 것이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요지이다.


많은 자기 계발의 구루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가상의 의사결정 팀을 만들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소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비트겐슈타인을 가상의 멤버로 초청해 지혜를 빌리기도 한다. 나도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면 구루들의 방식으로 가상의 멤버들을 초청하곤 하는데 그중 한자리는 당연히 L여사이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어떤 조언을 하셨을까?'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지금까지 나의 삶의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그녀가 세상에 기여하고자 했던 소명은 아니었는가를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