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긍정의 시조새

모은행 K부행장, 無적의 리더십

by 미스터Bit

다른 이들이 나의 특징을 평가하는 여러 표현 중에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표현은 바로 긍정적이라는 표현이다. 지금이야 내가 나와 대화를 많이 하고 사색도 하며 나에 대한 이해가 넓혀져 나를 많이 알아가고 있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사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은 모은행의 부행장이 되신 그 당시의 K부장은 나의 긍정을 처음으로 알아봐 주신 은인임에 틀림없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근무하게 된 홍콩에서 K부장을 처음 만났다. 일에 대한 의욕만 높고 가진 업무 자산은 미천하여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대기만 하던 나는 홍콩에 단기 근무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기라성 같은 업계 선배들 중에서 K부장은 유일하게 내가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동료이자 형이자 롤모델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항상 단정한 정장슈트와 브리프케이스, 여유 있는 걸음걸이와 어울리는 친절하면서 따뜻한 미소 그리고 즐거운 에너지는 K부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K부장은 그 당시 금융의 메카인 홍콩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자신의 자리를 못 찾고 있는 유일한 금융인임을 자책하며 방황하는 나를, 낯설고 좁은 집에서 매일 나오도록 이끌어 주었다. "Y야 구룡으로 넘어와 너 거기 있어봐야 창밖만 보고 있을 테니까 내가 일시킬께 있어서 불렀다고 하고 그냥 와" 그런 식으로 K부장은 내가 덜 부담스럽게 홍콩이라는 도시에 안착하도록 한결같은 마음을 내어주었다. 낯선 손님 같은 나에게 본인의 중요한 손님을 오히려 소개해 줘 가며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더 이상 손님이 없는 날이면 나를 본인의 손님으로 초대하여 내가 서성이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


한 번은 K부장의 부름으로 저녁식사에 불려 갔다. "Y야 저녁에 시간 되면 침사추이 OO식당으로 와. 손님이랑 저녁 약속이 있는데 오늘 아주 좋은 식당을 가니까 와서 저녁 먹고 가" 처음에는 중요한 손님과의 약속에 가는 자리라 부담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식당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정말 미쳤다는 표현밖에 안 나오는 홍콩물가 때문에 한 병에 만원이 넘는 소주를 마시는 일은 홍콩에 있는 금융인 사이에서도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전부터 가보고 싶던 고급식당에서의 저녁식사 기회는 체면을 차려 고사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 자리에는 홍콩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신 인상 좋은 노신사 두 분이 계셨고, 나는 눈앞에서 K부장이 고객과 글로벌 비즈니스 하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이 바닥에서 정평이 나있는 K부장의 영업방식을 직접보게되었다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날의 저녁은 마치 해외에서 고향 선배를 만난 것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흘러갔고, 나도 덩달아 그 자리에 같이 호흡하며 별 다른 소득 없이 거나하게 취해서 끝이 났다. '어 이건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글로벌 비즈니스가 아닌데 뭐지? 뭔가 어려움 개념들이 튀어나고 치열하게 경합하며 끌고 당기고 하며 딜이 만들어지는 그런 거 아니었어?' 다소 술이 취한 기운이 있는 가운데서도 개운하지 않은 질문이 계속 들었다. 더 가관인 것은 다음날 K부장은 "네가 어제 잘 놀아준 덕분에 그동안 공들여온 3천만 불짜리 자금 유치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며 몇일지 딜을 마무리하고 다시 어제 얘기한 횟집에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액의 자금은 이전되었고 우리는 다시 약속대로 횟집에서 또 축배를 들었다.


K부장은 나에게 업무와 인생의 경계 없이 세 가지 가르침을 알려준 큰 스승이다. 첫 번째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K부장은 항상 외부에 나갈 때 "나 놀다 올게"하고 시작한다. 당연히 일을 하며 농땡이를 친다는 뜻은 아니다. 지켜본 결과 K부장은 정말 좋아하는 놀이처럼 일을 즐기고 특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겼다. 두 번째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K부장은 모든 일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다. 일할 수 있게 해 준 회사도 감사하고, 찾아온 손님도 감사하고, 좋은 날씨도 감사하고 특히 아침에 마실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를 그렇게 감사해했다. 마지막은 걷는 습관이다. 그 더운 홍콩의 낮을 K부장은 정말 그렇게 걸어 다녔다. 지금은 나도 하루에 3만 보쯤은 거뜬하게 걷는, 누구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K부장이 걷자고 할까 봐 도망 다닌 적도 있을 만큼 걷는 게 고역이었다.


어느 날은 거액이전을 해주신 손님과 셋이 침사추이 어느 바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손님의 제안으로 각자의 와이프한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당신도 나를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게 되었다. 손님은 문자가 안 왔고 나는 '술 마셔?'문자가 왔는데 K부장은 보낸 즉시 '나도 사랑해'라는 답문자가 왔다. 항상 가족에게 감사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하던 K부장이 굉장히 큰 사람처럼 느껴졌고, 나도 K부장의 영향으로 더 좋은 가족이 되고자 노력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모은행 부행장이 된 후 다시 만난 K부행장은 여전히 다정하고 소박한 표정으로 "Y야.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특별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라며 겸손하게 본인의 소회를 말씀하셨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K부행장은 회사에 가장 낮은 직군의 직원에게도 초보자의 정신으로 낮은 자세로 질문하고, 다정하고 친절한 미소와 태도로 상대방에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공감하며, 일과 놀이의 경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객의 욕구를 어떻게든 채워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K부행장의 리더십은 말 그대로 적이 없는 無적의 리더십이고 나도 연마하려고 치열하게 노력 중인 특별한 리더십이다.


서두에 내가 말한 나의 긍정을 처음 알아봐 준 분이 K부행장이라고 했는데, K부행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늘 이렇게 얘기했다. "Y야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 같아. 말끝마다 '너무', '굉장히', '정말', '어마어마하게'를 너무 자주 쓴단 말이야"라는 말에 나는 "아니에요 부장님 전 정말 진짜로 굉장히 좋아서 하는 말이에요"라고 했고, K부장은 "거봐, 또 말할 때마다 거짓말 같이 표현하잖아. 근데 Y야, 그게 싫지 않아, 잘하고 있어"라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다. 긍정과 감사를 공부하는 요즘이 돼서야 K부행장님이 수년 전에 얼마나 큰 가르침을 자주 나에게 주었는지 이제야 깨닮는다.


삶이 감사하게도 K부행장님 같은 분이 큰 회사에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한 회사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좋은 리더가 중요한 이유는 또 다른 좋은 리더를 알아차리는 조금은 특별한 능력이 그들에게 있어 그렇다. 나 역시 K부행장님의 영향으로 처음 좋은 리더가 되고자 결심했던 것 같고, 많은 예비 리더들이 나처럼 좋은 리더들에게 영향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