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큰 그림을 보는 작은 거인

전직 투자분석가 L선임연구원, 리더 위의 리더

by 미스터Bit

입사동기를 며칠 밤낮으로 졸라 압구정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소개팅으로 L선임연구원을 처음

만났다. 소개해준 동기가 만나기 전부터 "여의도에서 투자분석하는 친구라 바쁜 친구라.."는 수식어를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첫 만남에 30분 이상을 늦은 L선임연구원을 기다리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다림의 짜증이 무색하게 입구에 나타난 L선임연구원은 작고 아담한 체구에 수수한 청바지와 스트라이프 남방을 적절히 단정하게 입었고, 얼굴에는 화장기가 거의 없는 단아한 매력을 빛처럼 발아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한눈에 나는 그녀가 내가 오늘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L선임연구원은 15년째 나의 인생코디네이터이자 상담자인 지금의 나의 아내이다.


첫눈에 반한 나와 달리 L선임연구원은 자석의 같은 극처럼 내가 가까이 갈수록 튕겨져 갔고, 나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그녀를 유혹할 아이디어를 일도 뒷전으로 미루고 온종일 궁리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늘 무게중심이 밖에 있는 극단적 E성향의 나를, 타고난 체력이 강하지 못해 태어나 줄곧 보약의 힘으로 버텨왔던 그녀는 바쁜 직업까지 더해져 초인적으로 바쁜 삶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기에, 따라다닐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눈치까지 없던 나는 그녀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여기저기 끌고 다녔고, 그녀는 그때를 끔찍이 피곤했다고 회상한다. 이렇듯 나와 L선임연구원은 정반대애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외형적이었던데 반해 그녀는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나의 이상은 공중에 붕 떠있는데 반해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현실이라는 지면을 꾹 밟고 살았다. 나는 타인에게 미움받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던 반면에 그녀는 타인의 미움을 개의치 않았고, 매사 즉흥적인 나에 반해 그녀는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계획하고 실행했다. 요즘 아이들 언어로 우리는 창의적이고 사람중심적이며 자유로운 ENFP남자와 실용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구조화 리더 ISTJ여자와의 만남이었고 행성이 충돌하듯 우리는 부딪힐 때마다 큰 굉음을 냈다.


지금은 12살이 된 아들이 생후 6개월 무렵이던 어느 일요일 낮에, 나는 아이에게 분유를 완전히 수유하고 나서 한 손에 든 채 평소와 다름없이 트림을 유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숨을 못 쉬고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하며 급기야 눈이 뒤집혔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겨우 큰소리쳐 아내를 부르는 동시에 핸드폰으로 119 버튼을 누르려 시도했으나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이 작은 생명체와 세상에서의 만남이 우리에게 고작 6개월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절망해했다. 이런 나와 달리 아내는 침착하게 119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렸고, 119 안내원의 어떻게든 아이를 울리라는 유도대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힘으로 아이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하늘의 도움으로 아이는 이내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119 대원분들이 긴급전화를 받고 우리 집에 채 5분이 안돼서 도착했는데 그때 너무 경황이 없어 대원분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한 게 지금도 두고두고 마음에 빚으로 남는다. 기회가 있다면 늦더라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렇듯 아내는 지금까지 나에게 균형감을 주는 큰 존재이다. 내가 들뜨면 들뜨지 않게 눌러주고 낮아져 있으면 높여주었고, 교만하면 겸손을 상기시켜 주고, 무르면 두드려 주었다. 특히 내가 멘탈이 흔들릴 때면(과거에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멘탈이 약한 축에 속했다) 더욱 아내의 리더십에 의존하곤 했다. 나는 중요한 의사결정의 길목에서 아내에게 현명한 길을 물었고 그 길은 지금까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미얀마 발령이 정해진 날, 나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나역시 가난하고 위험한 미얀마라는 낯선 나라에 대해 아는것이 전혀없어 확신이 없었는데, 차마 같이 가자고 가족에게 말하기가 미안해서였다. 오랜 고민 끝에 가족에게 얘기하지 말고 내일 조용히 인사부를 찾아가 발령을 제고해 달라고 말하기로 결심한 후, 불 끄고 침대에 누워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내가 미얀마로 발령 날 수 있을 거 같은데 안 갈라고"하고 말했다. 연년생 아이 둘을 낳고 경력을 포기한 채 현업에서 거의 10년을 물러나 있던 아내의 답변은 현직의 나보다 훨씬 프로의 답변처럼 들렸다. "회사에서 가라면 가는 거지, 고민하는 오빠가 나는 이해가 안 되는데. 그리고 나도 새로운 환경이 재밌을 것 같아"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사실 나는 아내의 이런 반응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아내의 간단한 정리로 우리 가족은 미얀마라는 낯선 곳으로 삶을 이전했다. 그때의 아내의 판단은 그 어느 때보다 옳았고, 결과적으로 나와 우리 가족은 긍정적인 관점에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나는 그래서 아내의 리더십을 리더 위의 리더로 정의하고자 한다. 내가 한 단위의 가족에서, 회사라는 조직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라는 집단에서 리더라고 불릴 수 있게 된다면 그 공의 90%쯤은 아내에게 배운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몽상가적인 기질은 아내덕에 현실에 더 가까워져 갔고, 즉흥적인 성격은 아내덕에 체계적이 되어 갔으며, 또한 미움받을 때 용기 따위는 일부러 내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갔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아내 덕분에 큰 그림을 보는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나는 오늘의 즐거움만 쫓는 철부지였고, 그런 근시안적인 행동들에 대해 거침없이 팩트를 꽂는 아내에게 나는 오히려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는데 지나고 보니 아내는 나와는 달리 거시적으로 큰 그림을 보는 것에 능했다.


아내가 한 위로의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은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다'는 말이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내 사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런 탓에 나는 자존감이 낮았고, 타인을 쉽게 비난하고 공격했으며, 리더나 성공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히 정해진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줄곧 생각했다. 그래서 내심 이인자로만 살아도 내가 타고난 운명에서는 최고 지점까지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내의 저 한마디로 내 알의 껍질이 깨졌고, 나는 그것을 뚫고 나왔다.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는 말은 진리였고, 나는 아직 그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내 안의 필터가 완전히 달라졌다.


15년 결혼 생활을 해보니 생판남이 탈없이 긴 시간을 산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이가 좋건 혹은 좋지 않건과는 상관없이 삶의 형태를 떠나, 두 사람이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서로에게 대단히 이타적이고 대단히 인내적인 배려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하는 상대로부터 삶의 지혜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언어로 설명하기 무척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고 감사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현재의 회사를 떠나 창업을 한다고 가정하면 초대 전문경영인으로 누구를 선임할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전직 투자분석가 이자 나의 아내를 선임할 것이다. 그녀는 리더 위의 리더이며 지금껏 내가 만난 누구보다 단단한 리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