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봉사와 배움

금융지주 해외 자회사 CFO Y이사, 여유와 부드러움의 리더십

by 미스터Bit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Y이사의 첫인상은 '멀끔하다'였다. 대한민국 메이저 금융지주의 해외 자회사에서 CFO로 당시 근무하던 그는, 하얀 피부와 댄디한 스타일의 단정한 옷매, 꾸민 듯 안 꾸민 듯 한 안경과 기타 소품들, 낮은 톤의 힘 있는 억양 그리고 매너 있는 태도가 그를 만난 상대로 하여금, 그가 전형적인 서울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Y이사는 성인이 된 이후의 인생의 반을 서울에서 살고 있으나 어린 시절은 경기도의 한 시골에서 자랐다고 한다.


지금은 고작 서울 강남에서도 한 시간 이내에 차로 갈 수 있고 지하철도 연결된 곳이지만,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 경기도의 시골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고 한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가난, 군부쿠데타와 독재, 민주화항쟁, 새마을운동의 부흥 등 대한민국의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세대들이 중장년이 되어 부모가 되었고, Y이사도 이렇게 전형적으로 끼인 세대를 부모로 두고 시골에서 고립되어 자랐다고 했다. 지금은 너무나 보편화된 자동차가 그 당시에는 오직 동네 부잣집만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었고 대부분은 오토바이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Y이사의 생활반경은 집을 중심으로 고작 2~3km였으며, 항상 TV에서 서울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동경하면서 꼭 어른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Y이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한마디로 '결핍'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가진 꿈과 동경의 크기에 비해 그가 자란 환경에서는 그의 욕구를 채워주기 어려웠고, 유독 보수적이었던 그의 시골공무원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것을 인내하라고만 가르쳤다고 했다. 대단한 인내가 아닌 먹고 싶은 과자가 있어도 인내해야 했고, 고기를 먹고 싶어도 또 인내야 했고, 옆집 또래아이가 가진 장난감이 가지고 싶어도 아버지의 타협 없는 강압에 의해 매번 인내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습관적 결핍은 그가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낮은 자존감의 큰 축으로 작용하였고, 급기야 그의 나이 22살에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그는 삶이 바닥까지 떨어져 죽음까지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어린 동생과 무기력한 아버지를 둔 장남의 무게 때문에 그마저도 꺾어야 했다고 한다.

Y이사는 항상 리더십을 갖춘 이들을 부러워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학생회장 동경했고, 대학에서는 축제에서 전문 MC 못지않은 진행을 하는 과선배를 부러워했으며, 직장에서는 항상 당당한 모든 이들을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는 아주 최근까지 그가 갖지 못한 그들의 당당함과 리더십은 당연히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라고만 생각했고, 아무도 그에게 그런 가르침을 준 적이 없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얀마 법인에서 리더의 경험을 쌓고 공부하면서 그는 과거의 그가 부러워했던 이들의 당당함과 자존감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더 했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Y이사가 좋게 말하면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다. 외향적인 것 같으면서도 낯을 많이 가렸고, 친절한 것 같으면서도 차가웠다. 더더군다나 카카오톡 프로필창에 '반짝반짝 빛나는 OOO'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살면서 Y이사 외에는 만나본적도 없으며, 그를 알아갈수록 다방면에서 그는 복잡했다. 내가 관찰한 Y이사는 사람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게 타인 입장에서 그의 자세를 변형시켰다. 그를 야구의 투수라고 비교하면, 그는 타자의 유형에 따라 강속구와 느린 공, 직구와 변화구, 슬라이더 때로는 포크볼 등 모든 구질을 던질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왼손 타자가 타석에 서면 갑자기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그런 변화무쌍함을 보였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Y이사의 리더십중 가장 큰 특징은 여유와 부드러움이다. 그는 어느 경우에 있어서 도 좀처럼 템포가 빨라지거나 격정적으로 되는 경우가 없고 본인 스스로도 여유와 부드러움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노력한다고 한다. 충청도 사람도 아닌데 지하철문이 눈앞에서 닫히고 있어서 좀처럼 뛰는 법이 없으며, 늦으면 다음 차를 타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직원들이 업무 실수를 할 때도 수습할 수 있다면 또 하나의 배우는 기회라며 그저 웃어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그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얀마 법인에 오기 이전까지 그는 오히려 꽤 터프했다고 했다. 주로 큰 기업들을 상대하는 기업금융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치열하게 경쟁했어야 했고 누구보다 욕심과 목표가 높았기에 늘 긴장되고 날카로웠다고 한다. 직원들의 작은 실수도 프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며 격하게 몰아붙였고, 이런 방식이 후배들이 이 잔혹한 직장인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강력한 도구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 때문인지 그는 늘 그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했고, 그러면서 시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조차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의 고단함과 시들어감은 미얀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덧 붙였다.


Y이사의 두 번째 특징은 배움의 자세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세상 모든 만불과 현상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으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무한대로 많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경험에 늘 목말라했고, 낯선 일과 낮선장소를 배우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간혹 인성이 좋지 못한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 저임금 노동자를 낮게 보는 언사를 할 때면, Y이사는 그들에게서 배움을 찾지 못하는 고학력의 한국 사람들이 그들보다 나은점이 없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가끔 그에게 "미얀마 사람들과 일하게는 힘들지 않으세요? 물으면, "힘은 드는데 일하면서 우리와 다른 미얀마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게 많아 기꺼이 감수하고 있어요. 공짜로 이렇게 좋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감사해해야죠"라고 어김없이 답하곤 했다. 그는 실제로 대부분이 무시하는 이 척박한 환경에서 배움의 자세를 항상 견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Y이사의 특징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그는 교육에 대한 믿음과 열망이 높았다. 과거 한때는 우리나라보다 객관적의 부의 지표가 높았던 버마(현 미얀마)는 엄청나게 부유한 자원과 3 모작이 가능한 비옥한 토지, 연중 온화한 날씨, 풍부한 강수량 등 소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조건이 완벽히 갖춰진 나라인데 오히려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이유가 교육에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여기서 금융을 할 것이 아니라 교육에 보다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회가 되면 꼭 교육 관련 비즈니스를 미얀마에서 해보고 싶다고 했고, 그것이 그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봉사의 실천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Y이사는 남을 돕는 행위만이 봉사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타인과 더불어 사는 의미 있는 행동들은 모두 봉사의 범주 안에 있다고 했다.


이렇듯 그는 그가 목적한 바는 아니었으나, 직업적인 이점으로 수만 명의 사람을 동료 혹은 고객으로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배운 경험으로 영업추진력, 위기관리능력, 문제해결능력, 기획능력 등 업무적으로 필요한 역량들을 적절히 배양하면서 오랫동안 업무적으로 꽤 괜찮은 평가에 이르게 되었는데, 미얀마에서 적은 규모지만 자회사를 리더의 위치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봉사와 배움이라는 평생의 미션을 발견하게 되었고,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앞으로는 본인보다는 넉넉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남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다고 쑥스러워했다.


나는 Y이사가 실제로 그런 높은 비전들을 심장에 품고 사는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검증해야 하는 부분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늦은 시기에 찾은 삶에 대한 의미와 남은 삶의 미션에 관해서는 나는 그가 정말 그 소명들을 잃지 않고 원하는 지점까지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아닌 타인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충분히 따뜻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