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 가?
3.1절 연휴가 넉넉한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쉴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데드리프트 160을 가뿐히 들어 제끼는 괴력의 형과 프리짐에서 새벽 근력 운동을 2번이나 할 수 있었고, 아들과 닌텐도 게임도 같이 했고, 아내와 산책 겸 근거리 데이트도 즐겼다. 무엇보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 혼자 사색하며 생각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기록한 적이 없다. 아직 완전히 이렇다 할 만한 거창한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한번 정리해보자.
미얀마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보니 아마도 나는 미얀마에서 보내는 그 시간 동안 그릇의 크기가 조금은 커진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인생 중반부는 미얀마 경험의 전과 후로 시기를 나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면 예전의 바쁜 직장인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우려했지만 사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내면의 변화를 통해 직감적으로 확신했었다.
막연한 변화가 아니라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 변화의 끝에는 부자가 되어 있는 나를 목표로 삼았다. 내가 되고 싶은 부자의 정의는 단순히 통장 잔고 걱정 없는 부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쓰는 부자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의 의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삶, 상대의 요청에 정중하게 '아니오'를 말하더라도 결과가 불안하지 않는 일상을 갖고 싶은 것이 지금 내가 꿈꾸는 삶이다.
눈치챘겠지만 나의 꿈은 직장인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해야 하고, 경영진이 계획한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구조에서는 밤하늘에 떠있는 달에게 다가가기 보다 어려운 꿈이다. 그런 면에서 직장인으로서는 내가 정의하는 부자가 되기 불가능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댜른 세상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일단 나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 확신하기에 지금의 글쓰기 행위를 거창하게 표현하면 내 성공을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따라서 나의 글은 보통의 직장인이 부자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성장기쯤으로 간주하면 적당할 것 같다. 내가 완성된 사람이었다면 자서전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앞에서 언급한 부자가 되기 위해 나는 기존 나의 아이덴티티를 해체해 목표에 적합한 형태로 재구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읽고, 쓰고, 운동하는 중년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고 단순화시키니 목표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까지도 사회에서 많이 언급되는 소위 부캐가 생겼고, 본캐보다 부캐로서의 시간을 늘리는 중이다. 서서히 인생의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본캐가 싫어졌다거나 번아웃이 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난 나의 일과 회사가 내게 가져다준 모든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고작 10년이면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회사는 더 이상 나에게 따뜻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남은 10년을 마치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다 태워 재만 남는 연탄이 되기보다는 불이 남아 있을 때 새 연탄에 불을 이어 오랜 기간 꺼지지 않는 연탄이 되고 싶다. 적어도 나는 정년으로 시들어가기보다는 평생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사회가 나아지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1885년 6월 23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앤드루 카네기는 컬리 상업 전문대학에서 연설 도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성공의 기본 조건이자 위대한 비밀을 알려드리면, 여러분의 에너지와 생각, 돈을 현재 하고 있는 일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 가르침은 그간 너무 많은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온 나에게 깊은 통찰을 주었고 나는 지금이 그걸 이행할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단 하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