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308

결국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위안받는다

by 미스터Bit

몇 년 만에 파주 출판단지에 갔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종종가곤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다가 오늘 일 때문에 다시 찾았다. 그 당시만 해도 파주 출판단지가 갓 유명해진 핫플이라, 건물이나 거리 풍경이 마치 새 옷을 입은 소년 소녀처럼 싱싱하고 파릇파릇했는데 지금은 곳곳에서 주름 같은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게 오히려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일전에 통 큰 책 선물을 주셨던 출판사 대표님과 업무 미팅이 잡혀 이곳에 왔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면, 대표님과의 연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고 싶어 일부러 일을 만들었다. 툭 터놓고 얘기하면 괴짜스러운 대표님의 언행에 분명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극단적 호에 가깝다. 뭐랄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좋다. 흔한 표현으로 인간미가 있다.

나 역시 금융권에서 십수 년 일하며 만난 회사 대표의 숫자만 해도 수만 명은 되는지라 어지간하게 장사꾼들의 유형을 볼 줄 아는 눈썰미가 있는데, 이분은 보통내기 장사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계산기를 좀처럼 두드리지를 않는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둘 중 하나인데 하나는 진짜 밑지고 퍼주는 스타일의 장사꾼이고 다른 하나는 계산가를 두드리는 것조차 들키지 않을 만큼의 대단한 장사꾼이다. 일명 사기꾼 유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으나 이분은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경험상 굉장히 드문 케이스다.

미팅 내내 업무관련 통화로 전화기를 놓지 않던 대표님은 뜻밖에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더불어 파주 출판단지 내 본인이 가깝게 지내는 회사 수 곳을 방문해 그곳 대표님들을 소개해 주었다. 혼자 영업 시도를 했더라면 한 달에 걸쳐도 간신히 만나볼까 하는 회사들과 반나절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안면을 튼 것이다. 누구보다 시간의 가격이 비싼 분인 것을 알기에 일정에도 없던 시간을 일부러 내어, 나의 방문을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만들어 주시려는 그 마음이 여간 고마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또 책을 한 바구니 동봉해 주셨고, 나는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했다.

성공학의 대가인 나폴레온 힐, 론다 번 등에게 영향을 준 월레스 와틀스는 1910년 쓴 저서 'The science of getting rich'에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동기가 작동한다고 했다. 그 세 가지 동기는 육체의 건강, 정신의 건강, 영혼의 건강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의견에 나의 생각을 약간 덧대면, 육체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은 내가 노력으로 어떻게든 그럭저럭 견인해 끌고 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영혼의 건강은 스스로 풍요롭게 할 수 없고 반드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굳이 실례를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가 자주 쓰는 용어만으로도 우리 영혼 건강의 현주소를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매일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 쓰는 '영혼이 털린다'는 표현이다. 나 역시 그제도,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회사에서 영혼이 탈탈 털렸다.

그래서 요즘 시대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사는가에 따라 내 삶의 방향과 질이 크게 달라진다. 결국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위안받는다. 위안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건강하고 밝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읽고 쓰고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고로 읽고 쓰고 운동하는 사람과 교류를 시도하라. 그러면 영혼도 풍요롭게 가꾸면서 우리 인생을 보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인 안선영 씨는 한 인터뷰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했다. 나를 바라보는 10명이 있으면 3명은 나에게 호의가 있고, 4명은 관심이 없고, 3명은 내가 어떤 선한 행동을 해도 비난한다. 나는 안선영 씨의 정의를 공감하는 한편, 그녀의 해석이 무척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1명의 호의와 7명의 무관심, 2명의 비난이다.

예를 들면 좀 더 와닿는데, 내가 만약 책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1명은 자기 일처럼 축하해줄 테고 7명은 전혀 관심 없고 2명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비난할 구실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어떤 예를 적용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그러니 너무 상처받지 말자. 나에 대한 평가나 의견이 10개 중 1개가 호의적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거니 영혼이 털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만약 당신이 지금 1개 이상의 호의를 받는 환경에 있다고 하면 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다.

예전에는 무관심과 비난하는 타인의 숫자를 줄이고 싶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살았다. 그것도 나름 좋은 경험이었으나 앞으로는 나에게 호의적인 단 한 명과 더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영혼을 풍요롭게 해준 대표님과의 시간은 여운이 길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타인에게 선한 관심이 가장 많은 선배형에게 아침에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집에서 저녁을 먹다 그제서야 생각이 나 늦은 콜백을 했더니, 내 목소리 듣고 힘을 받고 싶어 전화했다고 한다. 형의 전화 덕분에 나의 탈탈 털린 영혼에서 다시 새싹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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