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귀여운 얼굴과 그렇지 못한 그것

평화로운 매장을 지키기 위한 어느 매니저의 육탄 방어기

by 구십구 퍼센트 E

리테일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구름을 한 줌 떼어다 놓은 것 같은 하얗고 무해한 ‘솜사탕’들이 매장에 모여 평화롭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생명체들은 존재 자체로 고객과 직원 모두의 도파민을 생성시키며, 우리 매장을 잠시나마 지상 낙원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낙원에는 늘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날, 그 하얀 솜사탕 중 하나가 자신의 정체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뜨끈하고 크며 묵직한’ 무언가를 매장 한복판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것은 물리 법칙을 무시한 듯한 존재감을 뽐내며, 럭셔리한 카펫 바닥 위에서 서서히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찰나, 매장 입구에 새로운 고객 한 분이 그녀의 아들과 함께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내 뇌는 빛의 속도로 계산을 시작했다. ‘저 고객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 매장의 우아함은 이 뜨거운 물체와 함께 증발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고 포용성을 지향하는 리더로서 평소에는 아주 우아하게 걷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국경을 지키는 초병처럼 단호했다. 나는 문앞에서 기괴할 정도로 과장된 몸짓과 화려한 손인사를 동원해 제3의 고객들의 시야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밖에서 보면 마치 내가 열정적인 현대 무용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나는 인체 바리케이드가 되어 등 뒤의 ‘재앙’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솜사탕의 주인도 아닌, 옆에 있던 다른 단골 고객님이 아주 담담하게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마치 이 상황이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이라는 듯, 성자의 자비로운 손길로 그 묵직한 실체를 수습했다.

나는 문앞에 대자로 뻗어(?) 고객의 시선을 막으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시스템도 매뉴얼도 없는 곳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팀워크’와 ‘연대’가, 매니저의 필사적인 몸부림과 고객의 헌신적인 수습 사이에서 꽃피는 순간이었다.

결국 리테일이란, 그리고 리더십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예상치 못한 배설물의 습격 앞에서도 서로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망가지고, 기꺼이 손을 더럽히는 사람들의 세계. 나는 그날 이후 솜사탕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귀여운 털 뭉치들이 또 어떤 뜨끈한 교훈을 선사하더라도, 나는 다시 한번 기꺼이 몸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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