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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혁건 Nov 24. 2016

제1장 가수가 되다

쌍문 중학교 10인의 용사들

사고 후 스스로 변을 볼 수 없는 나는 며칠에 한 번씩 관장을 해서 변을 받아내야 했는데 관장약을 들고 온 간호사의 물음에 친구들 모두 손을 들었다. 

친구의 대변을 서로 받겠다고 나서다니. 이런 광경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장운동이 안 되어 변이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 친구 하나가 변을 손가락으로 파내 준 적이 있었는데, 옷을 벗고 누워 있는 나의 모습과 두 눈 부릅뜨고 변을 파내는 그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내 곁에 이런 유쾌한 용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은 명절이나 주말, 특별한 날이 되면 친구들 모두 우리 집에 모인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나 사업을 하는 친구, 결혼을 앞둔 친구, 벌써 아버지가 된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한 그들 덕분에 늘 든든하고 감사하면서도 가끔 울적해지기도 한다. 

오래 전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 바다를 향해 소리 지르며 뛰어 놀다 백사장 위에 드러누워 자기도 하고 해가 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기타와 함께 노래 부르던,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서로의 삶을 나누던 그 때…


행복한 추억이면서도 이제는 내가 다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떠올라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마다 들려오는 유쾌하고 단순한 목소리 “우리 친구 아니가!”     

껄껄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우리 친구 아니가!”를 외치며 시원스럽게 웃는 용사들이 오늘도 나의 두려움을 잠재워준다. 

그래. 한 명의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도 힘든 세상에 내게는 대소변까지 받아주는 10명의 친구가 있다. 

나의 멋진 용사들.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친구 아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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