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리고 온다. 분명 인생도 그러하다.
퇴근길에 종종 들리는 반찬가게가 있다.
예전에는 반찬을 사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주부인거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늘 회사에서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 나보다 맛있게 만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게 우리 가족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나만의 합리화를 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가끔 사오는 곳이다.
갈때마다 늘 밝게 인사를 해주시는 사장님 안색이 오늘은 몹시 안좋아보였다.
그러다 반찬을 고르며 우연히 단골손님과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괜찮으시냐는 손님의 물음에 약을 먹었더니 가슴도 뛰고 영 불편하다며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또 다른 손님이 어디가 많이 아프시냐며 걱정을 하니 머뭇거리며 공황장애 약을 드신다고 하셨다.
내 차례에 계산을 하며 슬쩍 " 사장님 저도 공황장애로 약 먹었어요. 먹기 힘들면 처음엔 반알만 먹으라고 하던데 일단 반알만 드셔보세요. "이러면서 또 오지랖을 피웠다.
이런 내 말에 사장님은
"근데 이거 언제 괜찮아져요? 좋아지기는 하는거에요 ?"하며 옅은 미소를 띄우며 물으셨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안다.
이런 불행이 나에게만 온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거라는 걸..
나 역시 사장님께 그런 의미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내 이야기를 해드린거다.
나의 슬픔이 때론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기에..
공황장애로 마음이 한없이 무너지고 말때 나를 일으킨건 새벽마다 읽었던 책들이었다.
위로의 글을 찾아서 읽어야 버틸수 있는 마음이었고 당시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의 많은 슬픔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불행 속에 이기적이게도 위로까지 받았으니 나역시 사장님께 위로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작년에 회사에서 신규직원 교육 관련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한 후배가 자택에서 원격교육을 들을수있는지 문의해 왔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니 넓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니 숨쉬기도 힘들고 땀도 나고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공황장애라고 했다며 울먹이길래 공간이 넓어서 그럴수 있다고 좁은 강의실도 있으니 일단 소규모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유하며 나도 공황장애였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후배 역시 안도의 눈빛으로 선배님은 지금 괜찮으신거냐고, 이게 좋아지기도 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도 이런 저런 말들로 후배를 안심시켰고 그 후배는 소강의실에서 남은 수업을 듣고 무사히 수료하며
수료식날 내게 와서 감사했다는 인사도 잊지않았다.
직장암 3기 진단으로 방사선치료, 항암, 직장절제술을 했던 엄마가 폐로 전이가 되어 두번째 수술을 다시 하게 되어 온하루가 슬픔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말기암환자였고 수술 후 독한 항암주사의 부작용으로 몹시도 힘들어 하셨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지만 그때 나를 지탱해주었던 건 엄마 병동에서 바로 보이는 호스피스병동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이 그저 본인의 죽음을 기다려야하는 환자, 그런 환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보호자.
그들의 헤아릴수도 없는 슬픔에 지나갈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한편으론 우리 엄마는 치료는 할 수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런 감사함이 출구가 없는 막막한 시련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너무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그 당시 솔직한 내마음이 그러했다.
이렇게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는 건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요즘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남의 삶의 무게를 지레짐작하고 하는 위로의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다.
내가 겪지도 않는 그의 슬픔을 내가 얼마나 이해할수 있으지도 모르겠고, 또 내가 위로라고 건넨 말들이 그사람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수도 있으니 말을 아끼게 된다.
힘이 나지 않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버거운 말인지는 내가 잘 알기에 쉬이 힘내라는 그런 말도 나오질 않는다.
대신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라며 반찬가게 사장님에게 처럼, 회사 후배에게 처럼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해준다.
모든 불행이 나에게만 휘몰아지는 거 같이 느끼는 사람에게 나의 슬픔이 그들의 슬픔에 위로가 되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길에는 터널이 있고 그 터널은 지나가는 길의 일부일 뿐이니 부디 그 터널이 너무 길지 않길, 무사히 잘 지나오길 바라며 말이다.
문득 내가 이렇게 나의 공황장애를 입밖으로 쉽게 꺼낸다는게 이미 나의 겨울은 봄을 데려다 주고 지나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