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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MARY Oct 27. 2024

그날의 바람, 날씨 그리고 우리




 파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초록색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센강을 중심으로 고대 근대 건물이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한참을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왔다. 곧 저녁도 먹어야 하고 밤에 보트를 타고 센강 야경을 보는 게 그렇게 황홀하다던데, 혼자 밤 여정에 나서기엔 조금 무서웠다. 급히 동행을 서칭 해서 내 또래 여자 동행을 구했다. 또래 남자분도 함께 와도 되냐는 질문에 흔쾌히 수락하고 저녁 시간을 기다렸다.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고민이 되었다. '나갔는데 너무 별로면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혼자 저녁시간을 보내기가 더 무섭다는 결론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내 숙소 바로 옆 건물이었다. 도착해서 간단히 이름만 통성명을 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햄버거와 맥주 주문을 겨우 겨우 하고 어색함과 적막함 사이에서 하하; 웃기만 했다. 그때 동행 남자분(Y)이 우리에게 파리 여행이 처음인지 물었고 처음이라고 답하자 본인은 업무차 파리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선 한국인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이후 어색함 속에 시간을 더 보낸 후 Y는 최근에 알게 된 한국인 분이 있는데 불러도 되냐고 물었고 우리는 초대에 동의했다. 초대받은 동행분(B)은 멀리서 걸어오는데 정돈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수염과 스타일이 누가 봐도 ENFP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물었다.     

"혹시.. ENFP 세요?"

"헉 어떻게 알았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ENFP 같으세요…. “

“관종이라 이런 관심 너무 좋네요”

“그리고 Y가 여기서 한국인만 조심하면 된다고 하고 곧바로 B를 초대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색하기만 하던 우리의 분위기가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점점 화기애애 해졌다.  식사를 다 하고, 계산을 할 때 B는 유럽에선 반드시 팁을 줘야 한다며 호기롭게 마담에게 팁 계산을 요청했다. 그러자 마담은 더욱 호기롭게 전체금액의 10%를 팁으로 요구했고 B는 당황했다. 1-2유로 정도의 팁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의 뜯기다시피 팁을 준 이후로 우리는 B를 10%(텐퍼센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는 식당 후기에 '마담을 조심하세요.'라고 남겼다.     


  B는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3년 동안 일하다 글을 쓰고 싶어 휴직을 하고 유럽 여행 중이라고 했다. 어쩐지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의 스토리가 참 흥미진진했다. 식사 후 센강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바또무슈를 함께 타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에펠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며 우리는 제법 친해지고 있었다.          

 바또무슈 티켓을 구매하는 기계에 한국어탭이 따로 있었고 무척 반가웠다. 구매를 뚝딱하고 바또무슈에 탑승했고 야경을 좀 더 생동감 있게 보고 싶어 좌석에서 일어나 센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갔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센강의 야경은 마치 그림 같았다. 추위를 잊고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덕분에 우리는 밤새 감기를 앓았다.          

 

 그다음 날 오후에 나는 가보고 싶었던 오르세 미술관에 갈 계획이라고 했고, B는 센강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다른 2명은 아직 계획이 없어서 시간이 맞는다면 함께할 수 있을 때 함께 하기로 했다.  전날 너무 추웠는지 챙겨 온 핫팩을 온몸에 두르고 오전 내내 자다가 시간이 아까워 부랴부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행했다. 동행여자(D)와 B는 미리 도착해서 관람하기로 했고 나는 한국에서도 늘 택시 인생이었는데 파리에서는 우버순이가 되어 열심히 달렸다.               

 

 미술관에 도착했다. 공항처럼 소지품 검사를 해야 했다. 긴장한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급한 마음에 후다닥 지나갈 때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지품 검사할 때 사용했던 내 트레이를 정리하지 않아서, 정리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평소에 주의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주의한 나의 모습을 발견해서 창피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부랴부랴 정리하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려 하자 나에게 안내했던 사람, 내 뒤에서 이 과정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웃으며 함께 Merci를 외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라면 시간이 딜레이되어 언짢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안내를 한 것도, 나를 기다려 준 뒷사람들도, 나와 함께 해주었던 마음도 한동안 나를 싱숭생숭하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고흐작품을 먼저 보러 갔다. 취미로 화실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구남자 친구의 요청으로 고흐작품을 그린적이 있는데 고흐 특유의 기법을 따라 하다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단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작품이 더 반가웠고 기대되었다. 적어도 그 정서를 조금이나마 공유했단 생각이 있었던 탓일까.           

 화가들의 원작품에서 색감과 터치를 직접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전시회에서와는 또 다른 전율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행분들의 시선에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가히 충격받아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맞다 나는 타인의 예술적 심상을 공유하는 것을 참 좋아했지. 바쁘게 살면서 잊고 살았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이다.      


 관람 후 배고파진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고 시간이 된 Y도 함께 하기로 했다. 당시 크림브뤨레에 미쳐있던 나는 무조건 크림브뤨레를 먹어야 한다며 주문했고, 각자 맥주를 주문했는데 우리는 S사이즈, B는 L사이즈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B의 맥주잔은.. 얼굴보다 큰 잔에 나왔다. 우리는 인종차별 당한 게 아니냐는 장난을 치며 웃었다. 이 날의 바람과 날씨 그리고 우리의 웃음은 2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인 역할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진 경험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우리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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