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으로 호텔에 들어갔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방으로 올라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철저하게 무산되었다. 들어가자마자 적어도 10명은 돼 보이는 외국인들의 강렬한 시선과 내 여권을 확인한 직원은 한국 팬이라며 상당한 시간 동안 내 손을 부여잡고 반가움을 표했다. 덕분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특별한 환호를 뚫고 개인 사정으로 남은 호텔의 숙박 환불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기대와 달리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고민되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 숙소를 고수하느냐 추가 비용을 내고 안전하고 관광지와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옮기느냐..
급하게 숙소를 예약하려니 관광지와 가깝고 안전한 15구(에펠탑 근처) 근처 호텔은 1박당 25만 원 가까이 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남은 4박을 결제한 후, 오늘 나를 구원해 준 택시 기사님께 연락해서 내일도 짐 이동을 부탁드린다는 연락을 남겼다.
분명 호텔사이트 상위권에 있는 숙소였고 후기도 좋았는데 호텔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호텔 내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잠금장치는 문고리가 전부였다. 심지어 방음이 잘 안 되어서 옆 방 대화 소리가 모조리 들리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호텔과 사이트의 협약으로 상위권에 노출된 것이었다. 여행은 준비하면 할수록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날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잠을 청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기사님이 오시기 2시간 전부터 짐을 챙겨놓고 기다렸다. 감사하게도 기사님께서 호텔 로비까지 와주셔서 짐을 픽업해 주셨고 안전하게 15구 숙소로 이동했다. 기사님께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기사님께서는 어쩌면 아가씨가 똑똑한 것이라며, 조언을 해줬음에도 본인의 선택을 따랐다가 도둑 맞거나 안 좋은 일로 돌아가게 된 한국인을 꽤 봤다고 하셨다. 심지어 본인 조카도. 하지만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계획을 바꿔서 숙소를 변경하는 나를 보며, 앞으로 안전하고 좋은 여행이 된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 때문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처음으로 느낀, 여행 2일 차였다.
새로운 숙소 앞에 도착했다. 언뜻 보아도 에펠탑까지 1분이면 갈 수 있어 보였다. 호텔은 크고 깨끗해 보였으며 직원들도 친절했다. 체크인 전 짐을 보관하고 곧바로 에펠탑을 향하여 걸었다. 가는 길 눈앞에 펼쳐진 센강의 윤슬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운 센강의 자태에 마치 이 도시가 수많은 화가를 낳은 것 같았다.
파리의 자연과, 사람들의 친절함과, 10년 이래로 이 날짜에 이렇게 화창한 날씨가 처음이라는 상황까지, 마치 액땜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순조롭고 행복한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