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파리에서 만난 B를 만났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모르겠다고, 사회 부적응자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비슷한 결의 고민을 하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나를 더 잘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는 마냥 웃었다. 그리고 최근에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에선 경험할 수 없는, 길에서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고 길 위에서 인생을 나누었다고 했다. 함께 게스트하우스(알베르게)에서 주방을 공유하며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길을 걷는 내내 한 인생에 대한 고민도 살짝 나누어 주었다. 파리 여행을 결심하기 전 한 전시회에서 ‘가야겠다.’는 전율이 올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동일했다. 그렇게 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MBTI는 과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 주머니 상황은 넉넉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쉬게 되어,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한 달 한 달을 겨우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께 기간제교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하기도 했다. 9월엔 추석도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가족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생각과 이 기회에 도움을 좀 청해야 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전화로 나의 상황과 생각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사실은 쉬고 있다고. 대학생 때부터 석사까지 등록금 한 번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가는 이 여행길이 나에게 너무나 특별하니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편지를 써서 등기로 보냈다. 그리고 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겨우 50만원이 남아 있는 통장을 들고 겁도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올해 두 번째, 파리 샤를 드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선택한 길은 프랑스-생장부터 스페인-콤포스텔라까지 800KM의 길이기 때문이다. 타국 공항에 도착해서 긴장 끝에 폰을 확인해 보니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아빠의 메시지와 함께 내가 부탁했던 금액의 입금 내역이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형체 없던 아빠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그리고 후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내 편지를 읽고 화가 나 편지를 북북 찢으셨다고 한다. 이제 와서 추측컨대 일을 그만둔 일보다 이때를 기회로 해외로 나갈 작정이라는 것을 예감하셨을 것이다. 손녀를 떠나보내기 싫은 할머니의 마음이다.
지난 파리 여행의 여운이 길었기에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으로 이동하기 전, 하루는 파리에서 머물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기 수월하게 역 근처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에 짐을 두고 들뜬 마음으로 너무도 그리워했던 파리의 거리로 나왔다. 지난 여행은 4월, 이번 여행은 9월이라 비슷한 온도의 바람이 내 얼굴을 반갑다는 듯이 쓸어내렸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지난 여행에서 좋았던 카페로 이동했다. 참 이상했다. 나는 한국에서 길치 방향치라 지도 없이 집 근처도 헤매기 일쑤였는데 이곳 파리에서는 달랐다. 지도 없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장소를 내 발길이 기억해 데려다주고 있었다. 마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