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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MARY Oct 27. 2024

인생에서 30대란


  어둑한 날씨가 마치 비가 올 것 같았다. 배낭 가방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 도착한 동시에 쏟아지는 비에 안도하며, 불어와 영어가 뒤섞인 안내 문구들을 하나씩 확인해 가며 내가 타야 하는 플랫폼으로 갔다. 순조롭게 기차를 타고 환승 지점으로 갔다. 2시간 이상 대기가 필요하여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갔다. 허기에 빵 2개와 라테를 시켜서 야무지게 먹었다. 환승 시간이 다 되어 버스정류장으로 갔고 버스표를 구매해야 하는데 처음 본 기계와 불어에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삐걱대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줄 서서 기다리던 한 프랑스인이 친절하게 도와줬다. 민망하고 고마웠다. 이런 마음들이 쌓이다 보니 내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나도 꼭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다.      


  드디어 생장, 순례길 시작 도시에 도착했다. 순례길 800km를 다 걷고 나면 마지막 종착점에서 수료증을 발급해 주는데 몇 킬로를 걸었는지도 표기를 해준다. 이걸 알기 위해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 머무는 도시의 상점, 숙소에서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시작 전 전체적인 공지를 듣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알고 보니 4월, 9월이 가장 걷기 좋은 시기여서 안 그래도 사람이 가장 몰리는 시기인 데다가 그 해는 가톨릭 종교에서 ‘죄 사함을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숙소를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있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바깥에서 자야 했다.. 출발 전 이 소식을 우연히 카페를 통해 접한 나는 파리에 있을 때 서둘러 2,3일 차 숙소를 예약하고 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사무실에선 원래 1:1로 설명을 해주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영어, 불어, 스페인어를 선택에서 소규모로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어 선택지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강제적으로 그나마 친숙한 영어를 선택해 듣게 되었다. 당시 독일인 2명과 내가 한 조가 되어 설명을 듣는데 정말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멍... 때렸다. 무엇을 설명해 준지 깨닫지도 못한 채 얼떨결에 얼른 숙소로 가라는 말만 겨우 알아듣곤 일어났다. 나가기 전 순례자의 시그니처인 조개 모양의 소품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몇 개 사야겠다 싶어서 고르고 있는데, 나와 함께 설명을 듣던 독일인 남자 한 명이 약간의 한심한 표정으로 날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당황한 나는 급하게 결제를 하고 나섰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숙소였고 나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당연히 같이 간다고 생각했나 보다. 가는 길에 등산 용품이 있는 상점을 발견했고, 급하게 준비해서 오느라 스틱이 없었는데 사야겠다 싶어서 독일 남을 두고 상점으로 가서 스틱과 이것저것 필요한 용품을 샀다. 아차 싶어서 쳐다본 독일 남은 한숨을 쉬고 인상을 찡그리더니 먼저 가버렸다. 오히려 좋았다. 난 혼자 있고 싶었으니까. ^^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었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을 여기에선 ‘알베르게’라고 불렀고, 총 3개의 공간이 있었으며 화장실만 남녀로 분리되어 있고 공간은 함께 사용했다. 내 베드에 짐을 내려놓고 씻고 난 후 내 옆 베드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 온 후 외국인과 본격적인 대화는 처음인지라 허둥 버둥 난리를 쳤다. 그 여자도 혼자 왔고 괜찮으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 언어가 섞인 식당들을 보며 정신이 아득했는데, 피시 요리와 와인을 주문하고 힘겹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신기하게도 그녀도 심리학을 전공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국적 불문하고 30대는 참 의미 있는 시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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