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도착해야 하는 마을은 Zubiri 였다.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난, 너무나 소중한 도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8시간에 달하는 길을 걸었다. 걷다가 발가락이 너무 아파 주춤했다. 이 보폭으로 걷다간 제시간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숙소 예약을 미리 해두었지만 오후 3시까지만 침대를 확보해 둘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으면 7km나 더 걸어서 다른 마을에 있는 숙소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찔한 통증이 있었음에도 걸음을 떼야했다. 처음에는 발의 상태를 고려해 보폭도 좁게, 어디가 더 고른 땅인가 살피며 느리게도 걸었다. 순간, 이러다가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에 과감하게 좀 더 큰 보폭으로 걷기 시작했다. 결국 시간 안에 도착해서 숙소를 세이브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픈 게 무서워 과감하게 발을 내딛지 않았더라면 세이브할 수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똑같지 않을까. 모든 것을 멈추고 싶을 정도의 상처받은 마음에 집중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때때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곪아 터진 발을 신발에 욱여넣고 걸어야 했던 오늘처럼.
겨우 씻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 나와 같이 방을 쓰게 된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파리병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파리를 너무 그리워했던 나로선 그녀가 너무 반가웠다. 한국인이며 이러이러한 이유로 파리를 너무 그리워했다는 말을 전하자 그녀는 너무나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휴직을 내고 1년 동안 여행 계획을 세웠고 첫 시작이 순례길이고 마지막 여행지가 한국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만난 지 1시간도 안 된 그녀에게 한국에 오면 내가 반드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곧바로 여행을 함께 시작한 대학교 친구 브라칠 친구 R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길 중간에 플랫한 길이 있어서 그 구간에는 산악용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겁이 많은 나는, 타국에서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두렵고 고민되는 와중에, 내 평생 언제 외국인들과 자전거 여행을 해볼 수 있을까? 란 마음으로 당장 그 자리에서 자전거 렌트 서비스를 예약했다. 나 자극추구 100%가 맞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기까지 대략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들은 나에게 어느 도시에 머물지, 같이 길을 걷자는 제안을 먼저 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길에서 한 번쯤은 마주쳐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고, 또 작은 바에서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함께 또 따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외향적인 성향임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꼭 필요로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면 늘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할 때 서운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 인상깊은 감동이 되었다.
그중 하루는 자전거 여행의 시기를 맞추기 위해 32km를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자전거는 우리가 요청한 날짜에 우리가 머무는 숙소로 배달 예정이기에 그날에 꼭 도착했어야 했다. 게다가 그날 오후 2-3시 기온은 굉장히 높아 다들 새벽부터 걸어야겠단 말들을 했다. 그러나 나는 랜턴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길에 화살표를 볼 수 있는, 해가 뜨는 시간에 출발해야 했다. 프랑스친구 V는 나에게 언제 출발할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해가 뜰 때쯤 출발할 것 같다고만 했다. 새벽이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3시부터, R 친구는 4시에 출발했다. V는 5시쯤 나가며 다시 나에게 언제 출발할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6시 반쯤이라고 답했다. 알겠다는 말을 한 후 V는 출발했다. 짐을 거의 다 챙기고 6시 반이 조금 안 된 시간에 V에게서 문자가 왔다. 리셉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같이 가자고. 눈물이 났다. 순례길에서도 길을 잘 못 찾는 나를 보았던 그녀이기에 다섯 시에 같이 출발하자고 하면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내가 준비하는 옆에 있으면 부담이 될까 봐 리셉션에서 한 시간 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배려를 받아본 적이 준 적이 있던가.
이 날의 일출의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녀의 주황색 헤드밴드가 마치 에르메스인 것 같다고 전하자 모델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먼 타국에서 이런 감동을 느끼게 한 그녀에게 무한 고마움을 표했다. V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좀 더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 브라질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때 R을 만났다고 했다. 나에겐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왜 아니겠는가. 마음만은 굴뚝같으나 시도하기가 무섭고 여러 경제적인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익숙한 곳을 떠나야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하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해가 뜨자 우리는 떨어져 서로의 길을 걸었다. 걷는 내내 V와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그러니까 호기롭게 석사를 도전하고 겨우 100만 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했던 나인데, 나는 왜 해외에서의 삶을 도전하지 않았을까 늦지 않았다면 도전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