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숙소에서 택배로 온 자전거를 받아 조립을 했고 드디어 자전거 여행이 시작 되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자전거 헤드가 이리저리 돌아가고, 안장이 맞지 않는 등의 이슈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 수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수리하기까지만 3시간이 넘게 걸렸고 결국 우리는 오후가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 결함으로 인한 이슈가 계속 있었다. 특히 나와 R의 자전거 배터리 이슈로 충전을 하느라 해가 지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배터리 충전이 겨우 되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5시간은 자전거를 타야 했는데 해가 지는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땐 순례길로 가기엔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 도로를 선택했고 열심히 밟았다. 그때 나는 안전장치도 없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도착이 한참 남아 있을 때 해가 져버렸다. 우리나라의 아스팔트와는 달리 선도 모호했고 도로는 고르지 않았다. 게다가 자칫하다가는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구조의 도로였다. 우리 셋은 한 손으로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자전거를 탔지만 여전히 배터리 이슈로 자전거가 잘 움직이지 않기도 했고 설상가상으로 큰 트럭이 무서운 속력으로 달릴 때는 바람으로 우리가 휘청이며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상황에 우리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위험을 감지했다.
R은 울기 시작했고 우리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작은 마을을 찾아 걸었다. 1시간 이상을 헤매고 찾은 마을에서 사람이 보이자 우리는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고..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듣고 자전거를 함께 실어 이동할 수 있는 차를 호출해 주겠다고 했다. 그제야 우리는 끼니를 때울 수 있었고 울고 웃으며 우리를 다독였다.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았고 우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어려움 속에서 전우애가 생긴 듯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큰 봉고차가 도착했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사람들이 다 자고 있을 10시였다. 순례길 특성상 아침 일찍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밤 9시 이후는 사람을 받지 않는데 우리의 사정을 고려해 주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짐을 정리하고 씻고 난 후 겨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자전거를 수리해야 했고 우리의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끌며, 몸에 생긴 상처와 근육통 등.. 결국 우리는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고 자전거를 수리점에 맡긴 후 일요일을 맞이했다. 일요일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는데 그때 내 가방에서 나온 여러 약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 이때 내 가방엔 R과 V가 필요한 모든 용품, 현금, 물품이 줄줄이 나왔다, (마사지용품, 비타민 등) 이때 R이 나의 가방은 영화 매리퍼핀스에 나오는 매리의 가방 같다고 했다. 없는 게 없다며, 그때부터 내 별명은 MARY가 되었고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후 순례길이 끝나고 그들의 마지막 여행지로 한국을 왔을 때, 경북에 있는 우리 본가 집에 머물렀을 때가 있었다. R이 감기에 걸리자 우리 가족들이 서로 자기의 감기약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이 집엔 Mary가 여러 명이라고 한 일화도 내내 생각이 난다. 내 정체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쉼을 가지며 세탁방에서 빨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같이 또 따로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