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 문이 열렸고,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선반 위 한국 라면이다. 고민 없이 라면을 주문해서 흡입했다. 한국인이 있어 소통이 너무나 편했다. 너무 반가움에 인스타에 업로드를 하자마자 나에게 순례길을 권했던 B에게 연락이 왔다. 여기 이모한테 자기 얘기하면 알 거라고, 반려묘를 직접 그려줬다고 했다. 나는 반가움에 곧바로 한국인 사장님을 찾았지만 무척 바빠보여서 이 말을 전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용기를 내서 혹시,, 몇 달 전 여기에 며칠 머물렀던 한국인 B를 아느냐고 그때 고양이를 그려줬다던데 말을 꺼내자마자 사장님은 놀란 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그림이 고양이의 마지막이 되었다며, 사장님 또한 약 10년 전 이 길을 걸었고 이 길이 너무 좋아서 길 위에서 만나 친구가 된 다른 나라 사람과 동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고 한국이 그립다고도 말했다. 타국 생활의 양면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알베르게 내 침대에 누워 앞으로 혼자 걸어내야 하는 여정과 그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한국인 중년의 여성분이 내 옆 베드로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대뜸 순례길을 걸으며 알게 된 한 분이 있는데 공황장애로 힘들어한다는 말을 전해 주셨다. 당장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근처엔 병원도 없어서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고민이 되었다.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상담했던 경험이 있어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사실 이곳에 와서 한국인을 만났을 때 좋았던 경험이 현저히 적어서 손을 내밀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혹시 그분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상담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말을 다 떼기도 전에 중년의 여성 분은 그 지인분을 데리러 가셨다. 숙소 앞에서 만나 산책을 하며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자식을 혼자 키워내며 쉬어 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 자연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것일까 라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압박감이 가장 큰 원인인 듯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며 엄청난 눈물을 쏟아 내셨다. 종착지까지 걷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 그 마음을 먼저 돌아 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고 길을 조금이나마 더 걸어보겠다는 말과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런 거구나. 내가 받은 도움과 사랑을 나 또한 전하고 살 수 있는 삶. 길을 걷다 부상자가 보이면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먼저 알고 있으니 그 사람의 가방을 나누어 메줄 수 있고 나에게 있는 간식과 약품을 먼저 내어줄 수 있는 삶. 이 길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축소판 같았다. 뭉클했다. 너무 바쁘게 지내온 내 삶을 돌이켜보고 내가 지금 느낀 삶을 한국에서도 지속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