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걸었다. 이곳에 혼자 왔고 혼자 걷기 시작했고 잠시 동안 그녀들과 함께 했을 뿐인데 나는 마치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외로움을 앓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일들(외국인 남자들의 도가 넘는 플러팅 등) 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한 날은 숙소에 도착했을 때 30개 정도의 베드가 있는 방으로 배정되었는데, 나 이외에 모든 사람이 남자였다. 순간 공황처럼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지러워 가방만 내려놓고 숙소 마당에 호흡을 정리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요청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너무나 곤란한 기색만 내비치었던 경험을 했었던 터라 또 요청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나의 증상들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순례길을 시작할 때 800km를 전부 걷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처음 계획한 대로 실행할 것인지 잠깐 함께했지만 너무나 그리운 그녀들과 남은 여정을 함께할지 무척 고민되었다. 그녀들에게 연락을 했고 어느 도시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의 연락을 너무나 반가워하던 그녀들은 바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있었던 일을 말하자 R은 그 사람들을 신고해야 되겠다고 화를 냈고 당장 이곳으로 와서 다시 함께하자고 했다. 나는 나의 이전의 계획보단 나의 원함을 택하며 100km가 넘는 거리를 택시로 이동해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는 동안 내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800km를 완주하지 않게 되는데 순례길을 걷는 의미가 있을까 고민에 잠긴 채로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손을 힘차게 흔들며 보고 싶었다며 뛰어와 나를 안는 그녀들을 보며 깨달았다. 이 길에서 가장 옳은 선택은 없고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만이 있고 나는 그걸 선택했구나.
앞으로 100km의 길 그리고 번외 편까지 함께했다. 번외라 함은 피니스테라라는 스페인의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지구가 네모나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우리는 4박 5일을 이 마을에 머물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테라스와 넓은 거실과 방, 우리가 머무르기엔 너무나 완벽한 공간이었다. 순례길에서와 같이 각자 보내고 싶은 시간들을 보내며 또 함께 저녁을 먹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와인병을 들고 해가 지도록 춤을 추고 그러다 길을 잃기도 했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날 밤을 앞두고,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나 익숙해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내가 부상으로 걷기 시작하기 전날 밤, 폐허 된 수도원에서 밤새도록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했던 그녀가 아닌가. 너무나 반가워 얼싸안고 안부를 전하다, 오늘 밤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며 그녀를 초대했다. 그리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내가 요리사를 자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새우로 감바스를 요리 했고 양파, 감자 프라이를 만들었다. 우리가 다시 집으로 가기 전 만난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운명인지. 서로의 나라에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서로에게 머물자는 약속까지 하며 아쉬움으로 마무리를 했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먼저 그녀들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한참을 울다, 한국에서 꼭 만나자는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출발했다.
내가 만약, 순례길 마지막 종착지에서 받는 800km 수료증이 더 중요하고 처음 계획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계산하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대게 타이밍이었고 마음에 가장 원하는 것들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인데 내 안에 가장 원함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는 게 전부 일지도 모른다.
약 한 달간 이 길을 걸으면서 해결된 것은 없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것도 없었다.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세상이 담긴 산티아고 순례길엔 사람과 사랑이 전부였다. 내 정체성을 다시 일깨워준 내 별명 Mary 그리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서 이 정체성이 담긴 삶을 지속하고 싶을 뿐. 안녕 산티아고, 까미노 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