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 앞에 선 소방관

대통령의 2차 체포 영장이 집행되던 날

by 소방작가

2차 체포 영장이 집행되던 날(15일), 차벽이 가로막고 있는 한남동 관저 아래에서 들것 위에 자동심장충격기(AED)와 구급 장비 그리고 모포를 올려놓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본래의 출동 지령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관저 입구에서 스크럼을 짜고 누워서 체포조의 진입을 저지하던 중, 공무 집행 방해로 경찰에 의해 해산하는 과정에서 가슴이 아프고 압사할 것 같다는 신고를 하여 출동한 것입니다. 구급차를 타고 한강진 부근에 도착하니 차량에 달린 거대한 스피커에서 방출하는 악다구니로 무전의 내용이 들리지 않았고, 인파가 밀집하여 환자 발생 지점까지 운전하여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장비를 챙겨서 급히 도달한 지점에는 이미 시위대가 해산하고 수사를 거부하는 자를 체포하기 위한 경찰들로 가득했습니다. 2년 전, 축제의 현장에서 교행 질서를 확립해야 할 공권력이 그 책임을 방기한 사이에 젊은이들의 응당 누려야 할 생의 기쁨을 미처 다 누리지 못하게 된 '이태원 참사'가 한강진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구급 상황이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시민을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가 탄핵으로 마비된 것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안전한 상황'이라는 역설적이고 기묘한 인상입니다. 기동대 인원이 지금처럼 그날, 그때 이태원에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장에서 응급 환자가 없다는 사실이 자명했음에도 귀소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불법 비상 계엄과 내란 혐의를 받아 국회의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 실탄이 장전된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영장 집행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유혈 사태를 유도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공포가 관저가 자리한 언덕 아래에 새벽 어스름처럼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궤에 의한 손상과 심정지 환자를 이송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자, 여기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형사들이 피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만약 기관총이 연사된다면 외상 환자가 수 없이 많이 발생할텐데 챙겨온 가방 안에는 그들 모두를 지혈할 도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들것은 관저와 가까운 우리 구급대에서 챙겨온 것 하나 뿐이었으며, 들것을 밀고 갈 구급차와의 거리도 멀었습니다. 단순하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위험한데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당장 병원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이런 감정은 솔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때 진실로 걱정되는 대상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보급된 자켓을 입고 손에는 푸른 라텍스 장갑을, 머리에는 하얀 플라스틱 안전모를 쓰고 있는데 저는 제가 괜찮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공수처와 국수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은 죽고 싶어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을 고기 방패로 내세우고, 법적 권한을 넘어서는 지시를 아무렇지 않게 강요하는 관저의 주인은 관저 바깥의 동요를 헤아리고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는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아우슈비츠를 주제로 한 영화들과 달리 수용소 내부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대신하여 루돌프 회스가 기거하는 관사에서 아내와 함께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 장면을 노출합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마치 포드의 자동차 공장처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를 원했고, 유태인들을 '수거'하여 적제물처럼 탑재하고, 연소, 냉각, 적제물 제거 그리고 다시 적제물을 탑재하는 과정이 물샐틈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영화 제목처럼 그런 것은 그의 '관심(interest)'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스는 아내와 같이 가족들과 아름답게 꾸민 집에서 목가적인 삶을 잘 영위하는 '영역(zone)'에만 마음을 기울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씬은 사위 루돌프와 딸 헤트비히의 초청으로 본토에서 폴란드로 휴가를 보내러 온 리나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한밤 중에 환하게 사위가 밝아지는 것을 본 리나는 수용소에서 밝아오는 빛이 유태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하여 소각하는 과정에서 비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위와 딸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황급히 집으로 도망갑니다. 그런데 루돌프와 그의 아내는 리나가 말도 없이 가버린 것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소각로에서 나온 재를 라일락에 비료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이들은 사람을 비료로 먹고 자란 정원을 보며 이곳이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날 아침, 경호처는 대통령이 '총이 안되면 칼을 써서라도 막아!'라고 했던 명령을 거부하고 영장 집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였습니다. 그제야 출동한 우리 구급대는 들것을 회수하여 구급차로 돌아와 차 안에서 대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집회 주최측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송출하는 뉴스를 통해 대통령은 그날 아침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여당 의원들에게 대접하며 정권 재창출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체포 직전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어 자신을 향한 체포 영장 집행은 '불법의 불법의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극우적 지지자들에게 유포했습니다. 그들이 수사관들의 퇴로를 막아 체포를 막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확실히 윤 대통령은 관저 바깥에서 유혈 사태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그의 'Zone of Interest'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현재 그의 Zone 안에 들어있는 관심사는 어떻게 정치적·사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지연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 뿐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 영장이 집행되는 순간, 저는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출근한 지 25시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체포되자 대통령실은 연초에 대통령이 직접 만년필로 적은 육필을 공개했습니다. 그것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혐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대통령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50대남성은 공수처 인근에서 분신하며 중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오늘(19일) 새벽, 헌정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자 그의 지지자들은 구속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하고 법원에 난입하여 영장을 발부한 영장전담판사에게 테러의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인 또 다른 내란(형법 제87조,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의 기본적 기관을 강제로 폐지하거나 그 기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윤 대통령이 체포되던 날, 핸드폰으로 남긴 영상 속에서 반성과 참회의 메세지를 냈더라면 이러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만년필로 지금의 생각을 옮겨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삼이사의 글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취재를 하던 중 마음이 몹시 괴로워 영화 제작을 단념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던 순간, 아우슈비츠에서 비밀리에 저항운동을 했던 실존 인물 '비스트로나-코워제이치크'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마음을 다시 바꿉니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노역할 처지에 놓인 수감자들을 위해 어둠이 내린 틈을 타서 노역장 곳곳에 몰래 사과를 숨겨둡니다. 폭군의 만년필은 공동체를 향해 흉기처럼 휘두르는 와중에도 시민의 만년필, 인간의 만년필은 사람들의 고통을 멎게 하기 위한 사과를 그려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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